최근 한 언론사 데스크를 만날 일이 있었다. 자연스레 기사 작성과 인공지능(AI) 얘기가 나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기자들이 AI로 기사를 쓰면 AI 티가 나서 기자들에게 무책임하다고 잔소리를 했어요. 그런데 이젠 기자들이 AI도 거치지 않고 초고를 그냥 보낼 때 뭐라고 하게 되더라고요. AI가 한 번 미리 살펴주면 글이 훨씬 좋아지거든요.”
그 무렵 다른 언론사 원고 담당자에게서는 “혹시 원고에 AI를 사용하셨나요?”라는 질문도 받았다. 아니라고 했지만 “AI로 작성된 글은 나중에 다 프로그램으로 파악할 수 있다”며 “AI 사용을 밝히지 않은 글이 올라가면 네이버로부터 감점을 받으니 사람이 쓴 글이란 걸 확실히 밝혀 달라”는 얘기였다.
한쪽에선 데스크가 일선 기자에게 AI로 초고를 다듬으라고 하고, 다른 쪽에선 AI 글 때문에 신문사가 포털 뉴스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며 두려워했다. 둘 다 나름대로 이해는 갔지만 한 가지가 걸렸다. 과연 AI의 글과 사람의 글을 구별할 수 있을까?
미아 발라드라는 미국 작가가 최근 좋지 않은 일로 유명세를 탔다. 발라드는 자비출판으로 ‘샤이걸’(Shy Girl)이란 공포소설을 출간했는데, 틱톡에서 이 책이 인기를 끌자 지난해 유명 출판사 아셰트가 판권을 샀다. 하지만 이후 독자들이 동일한 묘사와 표현의 반복을 이유로 AI가 책을 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출판은 모두 취소됐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AI 대필 의혹에 두려워하는 작가들의 모습을 다뤘다. 이 작가들 중 한 명은 자신의 글 속 ‘AI 글쓰기 흔적’을 찾아준다는 서비스에 자신의 글을 입력했다. “82%는 AI가 작성한 글”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물론 작가 스스로 AI의 도움 없이 쓴 글이었다. 기술은 아직 사람과 AI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한다. AI 서비스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돈을 내면 사람이 쓴 글처럼 바꿔 드릴게요.”
작가들의 두려움은 AI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에서 비롯된다. 미국 Z세대를 대상으로 한 갤럽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AI를 즐겁게 받아들인다는 Z세대는 작년보다 14%포인트 줄어든 22%에 불과했다. 반면 AI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는 응답은 9%포인트 늘어나 31%에 이르렀다. 분노가 낙관의 자리를 대체하는 상황에서 글쓰기에 AI를 사용했다는 낙인은 작가들에게 더 큰 두려움이 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AI를 쓰는 게 아니다. 쓰고도 숨기는 게 문제다. 솔직하게 AI 사용을 밝히는 건 때로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AI의 도움을 받아 약 6개월 만에 600여편의 기사를 혼자 작성한다는 포천의 닉 릭턴버그 기자 같은 사람은 ‘새로운 형태의 스타 저널리스트’가 됐다.
한때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쓰던 평론가들은 컴퓨터로 글을 쓰는 작가들의 글을 깊이 고뇌하지 않는 가벼운 글이라고 비평했다. 물론 근거 없는 얘기다. 1993년 영화 ‘쥬라기 공원’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첨단 컴퓨터그래픽(CG) 기술에 감탄했다.
하지만 영화 속 일부 공룡은 여전히 정교하게 제작된 기계장치 인형을 사용한 아날로그식 특수효과의 산물이었다. 관객들은 어떤 공룡이 인형이고 CG인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직 진짜 같은 공룡들에 감탄하며 영화를 즐겼다. AI가 현실을 만들어내고,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창작물을 생산하는 지금, AI는 과연 전기 원고지에 글을 쓰고 있을까. 기술은 숨길 대상이 아니다. 우리와 한 팀일 뿐.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