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이란 전쟁 여파로 우리나라 수입 제품의 가격 수준이 구제금융 사태 이후 28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치솟았다. 국제유가 상승과 고환율의 이중고가 수입 물가를 끌어올렸다. 여기에 국제 물류비용까지 치솟아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부담이 커지고 있다. 올해 원유 공급 부족이 1970년대 오일쇼크와 맞먹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와 경제 전망을 어둡게 한다.
한국은행이 15일 발표한 수출입물가지수 통계에 따르면 3월 기준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 잠정치·2020년 수준 100)는 169.38로, 2월보다 16.1% 올랐다. 지난달 상승률은 1998년 1월(17.8%) 이후 28년2개월 만에 가장 높다.
수입물가 상승을 주도한 건 원유 등 광산품(44.2%), 석탄·석유제품(37.4%)과 화학제품(10.7%)이었다. 원유(88.5%)·나프타(46.1%)·제트유(67.1%)·합성 고무 원료인 부타디엔(70.6%) 등이 큰 폭으로 올랐다.
원유 수입가 상승률은 ‘원화’ 기준 원유 품목지수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5년 이래 최고치다. 계약통화(달러화 등) 기준 상승률(83.8%)은 1차 오일쇼크 당시인 1974년 1월(98.3%) 이후 52년2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지난달 월평균 두바이유는 배럴당 128.52달러로 2월(68.40달러)보다 87.9% 뛰었다. 주간 종가 기준 월평균 원·달러 환율 역시 2월 1448.38원에서 지난달 1492.50원으로 급등했다.
보통 수입물가가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주기까지 시차는 짧게는 1개월에서 3개월이 걸린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입물가 상승은 소비자물가지수·생산자물가지수에 바로 영향을 준다”며 “인플레이션은 높아지고 경제성장률 하방 압력은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 교수는 “관건은 중동 사태의 지속 기간과 현재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에너지 인프라 피해 정도”라며 “중동 사태가 조만간 끝나면 영향은 제한적이나 장기전으로 가면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주요 국제기구와 해외 투자은행들은 올해 한국의 물가상승률을 높여잡고 성장률은 하향 조정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전날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서 한국 물가상승률을 2.5%로 예측했다.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1.8%에서 2.7%로 0.9%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반면 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2.1%에서 1.7%로 0.4%포인트 내렸다.
이미 수입물가가 뛴 가운데 물가를 자극할 우려가 있는 수출입 운임도 중동과 미국을 중심으로 크게 올랐다.
관세청이 이날 발표한 ‘3월 수출입 운송비용’에 따르면, 지난달 중동행 해상 수출 컨테이너(2TEU 기준) 운임은 525만1000원으로 미국과 이란 간 전쟁 발발 직전인 2월과 비교해 42.7% 뛰었다. 미국 서부행 운임은 561만1000원으로 전월보다 24.3% 상승했다. 유럽연합(EU)도 전달보다 5.8% 오른 341만4000원으로 나타났다.
해상 수입 운송비 역시 미국 서부(24.2%), 중동(18.1%)이 큰 폭으로 올랐다. 일본(20.4%), 중국(8.1%), 베트남(3.0%)도 상승했다. 항공 수입 운송비는 미국이 50.4%로 급등했고, 중동(18.3%) 상승 폭도 컸다. 이 외에도 베트남(12.6%), 중국(6.6%), EU(3.8%) 등이 상승했다.
당장 종전해도 원유 공급량이 전쟁 이전으로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까지 잇따라 중동 사태 충격파가 단시일 내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14일(현지시간) 이란 전쟁과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3월에 하루 평균 1050만배럴 석유 공급이 줄었다고 집계했다. 이는 세계 하루 석유 소비의 10% 수준이다. IEA는 5월 해협이 재개방돼 중동 석유 수송이 원활해진다고 해도 하루 공급량은 전년보다 150만배럴 줄어든 수준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피에르 올리비에 구린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4월 경제전망 브리핑에서 “석유 생산량 감소가 현재까지 연간 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2%에 달한다”며 “오늘 당장 전쟁이 중단된다고 하더라도 올해 원유 공급 부족 규모는 1970년대 오일쇼크와 맞먹는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