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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500년전 여신묘 발견, 세계사의 본질적 화두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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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서구 역사학계는 인류 문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견고한 역사관(歷史觀)을 확립했다. 이른바 ‘4대 문명’이라 불리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하 문명의 계보가 그것이다. 거대한 강 유역의 비옥한 토양을 토대로 도시와 왕권, 문자 체계가 형성되면서 인류가 진일보했다는 유물론적 도식은 오랫동안 세계사 기술의 표준이자 거부할 수 없는 정설로 군림해왔다.

 

고구려 각저총 씨름도 벽화속 곰(웅녀)의 모습. 출처: 국가유산청
고구려 각저총 씨름도 벽화속 곰(웅녀)의 모습. 출처: 국가유산청

그러나 20세 후반 비약적으로 축적된 고고학적 성과는 문명의 기원을 바라보는 인류의 시각에 근본적인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아메리카의 안데스와 아즈텍 문명에 대한 재평가, 그리고 아시아·중동 전역에서 쏟아져 나온 광범위한 문명권의 발굴 소식은 거대한 인식 변화의 기폭제가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인도의 라키가리(Rakhigari) 유적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도 기존의 연대기와 학설을 송두리째 뒤엎는 새로운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문명은 특정 지역의 전유물이 아니며, 세계 곳곳의 척박하거나 비옥한 환경 속에서 저마다의 양태로 태동했다는 사실이 강력하게 대두된 것이다. 학문적 진보는 2010년대 중반 이후 ‘다지역 문명 형성론’이라는 새로운 담론을 구축하며,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 인류사의 지도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문명이 특정 지점에서 시작되어 주변으로 전파되었다는 과거의 고착된 가설을 넘어, 이제는 세계 각자의 고유한 영성과 문화적 역량을 바탕으로 태동한 새로운 문명사적 인식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1983년 중국 동북지방 요하(遼河) 상류 우하량(牛河梁)에서 발견된 ‘여신묘(女神廟)’ 유적은 그 연대가 무려 기원전 3,500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동북아시아 선사시대의 기원과 성격을 규명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의 지평을 모성적 신성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유적의 발견이 세계 학계를 경악하게 한 이유는 고대 중국 황하 문명 중심의 세계관에 본질적 파열음을 냈기 때문이다. 우하량의 홍산(紅山) 문화는 황하보다 무려 천년 이상 앞선 시기에 이미 고도의 정신세계와 정교한 제천 체계를 구축한 독자적 문명권의 실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문명의 여명기에 인류를 이끌었던 진정한 주도권이 가부장적 무력이 아닌, 하늘을 경외하며 만물을 보듬는 모성적 영성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된 것이다.

 

우하량 여신묘 유적이 지닌 진정한 가치는 해당 유물의 구성 체계가 동북아시아 선사문화의 상징, 즉 한(韓)민족의 기원과 긴밀히 연결된다는 점에 있다. 학계에선 그 근거로 여신묘 내부에서 출토 된 실물 크기의 여성상과 곰의 턱뼈와 곰의 발바닥을 형상화한 소조물에 주목했다. 이 신령한 상징들의 조합은 단순한 제의용 장식을 넘어선다. 대신에 당시 고대사회가 곰을 신성한 존재로 받들며, 여성의 잉태와 생명의 신비를 공동체 최고의 가치로 숭상했던 고결한 세계관의 발견이었다. 이러한 고고학적 정황은 우리 민족의 역사가 태초부터 단순히 생존을 위한 투쟁의 노정이 아니라, 하늘부모님을 모시는 모성적 영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상징 구조는 우리에게 익숙한 단군 신화의 서사와 실로 경이로운 공명을 이룬다. 곰이 여인으로 변모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웅녀 이야기는 가벼운 우화가 아니게 된 것이다. 곰 토템과 여성의 잉태 서사가 결합된 여신묘의 실체는 동북아시아 선사문화 속에 실제로 존재했던 신앙 체계이자, 우리 민족의 심층 의식 속에 각인된 문화적 기억의 반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목할 사실은 우하량 유적이 형성된 기원전 3천 년 전후의 시기에 형성된 문헌과 고고학 유적을 통해 확인되는 동북아 정치·문화 공동체가 바로 고조선 문화권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요하와 한반도 일대에서 출토되는 비파형동검 문화권은 선사문화의 공간적 범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고고학적 지표이며, 우하량 여신묘는 그 영성적 중심지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단군 신화가 환웅·웅녀·단군이라는 삼중 구조 속에서 하늘의 질서와 인간 세계의 탄생을 설명하듯, 우하량 유적은 고조선 문화권의 뿌리 깊은 곰 토템 신앙과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세계관이 실재했음을 웅변한다. 다시 말해, 우하량 여신묘는 단군 서사가 후대의 필요에 의해 가공된 허구적 상상이 아니라, 고대 동북아시아 문명이 공유했던 종교적 세계관과 통치 철학이 투영된 실체적 역사임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의미다. 5,500년 전 이미 한반도는 여신을 정점으로 하는 숭고한 제천 의식과 사회적 위계가 실재했음을 물증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웅녀의 서사는 구비 전승되는 신화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우하량 제단 위에서 거행되었던 실체적인 국가 의례와 통치 행위를 통해 역사적 사실로 육화(肉化)되어 있었던 것이다.

고조선 연대기로 추정되는 우하량 여신상. 출처: 내몽고 자치구 우하량 박물관
고조선 연대기로 추정되는 우하량 여신상. 출처: 내몽고 자치구 우하량 박물관

◆ 홍산의 여신과 한민족의 웅녀

 

신화 속 곰이 여인으로 변모해 환웅과 결합하고 단군을 낳았다는 서사는, 실상 고대 사회의 역동적인 세계관을 시사한다. 이는 곰을 토템으로 숭배하던 토착 집단과 천신(天神) 사상을 앞세운 이주 세력이 결합하여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형성해 나간 과정을 상징적으로 투영한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군 서사는 집단의 허구적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고대 사회의 종교적 세계관과 초기 국가의 정치적 질서를 정교하게 증언하는 상징적 텍스트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신화적 상징은 요하 일대에서 발굴된 여신묘의 실체적 존재를 통해 비로소 역사적 생명력을 얻는다. 고대사 연구자들은 이 여신상을 고조선 문화권의 근간이 된 선사 신앙 체계와 연결하며 그 역사적 계보를 합리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즉, 이 유적은 단군 서사에 녹아든 세계관이 한낱 신화적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동북아 선사문화 속에 뿌리내린 태고의 종교적 사유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실체적 단서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늘의 질서를 땅 위에 구현한 듯한 여신묘의 제단 구조와 천문학적 배열은 5,500년 전의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정교하다. 정교하게 배치된 제의(祭儀) 공간과 상징 체계는 당시 사회가 이미 일정한 우주관과 의례 질서를 공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여신의 눈에 박혀 있던 푸른 옥기(玉器)는 반만 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날까지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러한 유물은 조형물이 아니라 생명과 질서를 신성한 원리로 이해했던 고대 사회의 영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상징적 흔적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하량 여신묘는 동북아시아 선사문화가 정복과 권력의 논리 이전에 생명과 생성의 질서를 중심에 두고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여신묘의 여성상은 우리 민족의 건국 서사 속에 등장하는 시조모 이미지와도 상징적 연관성을 지닌 존재로 해석되기도 한다.

 

홍산문화가 한민족 고대사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단순히 일부 유물의 유사성 때문만은 아니다. 적석총 계열의 무덤 구조, 빗살무늬 토기 문화, 그리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원형 제단과 같은 요소들은 요하 유역과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이어지는 선사문화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적 단서로 논의되어 왔다. 이러한 점에서 일부 연구자들은 홍산문화와 고조선 문화권 사이에 일정한 문화적 계승 관계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여전히 학문적 논의가 진행 중인 영역이다. 그러나 홍산문화는 적어도 동북아시아 선사문명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문화권이며, 고조선 문명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의미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고고학적 유산임은 분명하다.

 

◆ 인류 문명이 독생녀를 이해하는 문화적 기억

 

홍산의 여신묘에서 곰 토템과 여성 신성이 결합된 구체적 형상이 확인된 것은, 단순히 유물 한 점의 발견을 넘어 우리 민족의 기원적 영성이 모성적 원류에 뿌리내리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기원전 3,500년 무렵으로 소급되는 이 유적은 생명의 탄생과 공동체의 시작을 ‘여성적 신성’의 질서로 이해했던 고대 사회의 고도화된 사유 체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는 웅녀 신화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선사 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한민족 특유의 영적 DNA임을 보여주는 토대이다.

 

나아가 이러한 모성 중심의 상징 질서는 고조선을 지나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심장부에서 시조모 숭배와 여성 존중의 문화적 기억으로 작동해 왔음을 역사적 사실이다. 결국 여신묘의 발견은 가부장적 역사관에 가려졌던 여성 중심의 섭리적 사연을 복원하고, 잃어버린 모성 주권을 되찾기 위한 인류사의 오랜 갈망을 증명하는 토대가 된다.

 

종교 문화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인류의 시조인 해와의 타락 이후 여성의 위격은 섭리 역사의 전면에서 물러나 수천 년간 인고와 수난의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 성경적 교리가 투영된 서구 중심의 역사관 속에서 여성은 주체적 구원의 파트너이기보다 원죄의 통로 혹은 보조적 존재로 국한되어 왔으며, 이러한 영성적 소외는 역설적으로 다시 오실 여성 메시아를 향한 탕감과 복귀의 처절한 복선이 되었다.

 

한편 기독교 전통에서는 예수를 ‘독생자’라 부른다. 이는 하나님이 직접 보내신 구원의 주체라는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통일교 신학에서는 이러한 이해를 확장하여, 인류 구원섭리의 완성을 위해서는 독생자뿐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녀’ 또한 역사 속에 등장해야 한다는 사유가 제시된다. 여기서 말하는 독생녀는 신화 속 여성 인물이나 모성의 상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부모님의 뜻을 지상에서 실현하는 섭리적 주체를 가리킨다.

 

물론 홍산 여신묘와 웅녀 신화에 투영된 여성성을 곧바로 독생녀라는 실체적 존재로 치환하기에는 시간적·공간적 간극이 존재한다. 다만, 우리 한민족의 문화적 기억 속에 여성이라는 상징이 생명과 공동체의 시작을 설명하는 핵심 기제로 면면히 작동해 왔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인류 구원 섭리를 설파하는 과정에서 ‘독생녀’라는 개념이 어느 날 갑자기 돌출된 생경한 교리가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잠들어 있던 오래된 영적 원형과 맞닿아 있음을 시사한다. 기독교 신학이 인류 구원을 위해 하늘이 보내신 외아들을 ‘독생자 예수’로 고백하듯, 독생녀는 타락한 인류를 참사랑으로 거듭나게 하고 완성된 이상 가정을 실현하기 위해 하늘이 직접 이 땅에 보내신 주체적 여성 메시아인 것이다. 결국 5,500년 전 우하량의 제단에서 확인되는 모성적 권위는 인류사 내내 가려져 있던 독생녀의 자리를 예비한 섭리적 마중물이라는 해석이 합리적 추론이다. 이름 없는 여인들의 정성과 웅녀의 인고, 그리고 홍산의 여신이 증언하는 시원의 주권은 이제 독생녀라는 실체적 현현을 통해 역사의 전면에서 완성의 꽃을 피우고 있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고기훈 박사(한국학) 

우리가 홍산의 유적지에서 확인하는 것은 단지 낡은 흙인형이 아니다. 그것은 남성 중심의 사관이 지워버렸던 인류 문명의 본질적 시작점, 곧 참어머니의 주권이 살아 숨 쉬던 실제 역사의 현장이다. 이러한 역사적 진실은 가정연합이 선포한 독생녀 사상이 단순히 종교적 선언을 넘어, 인류가 잃어버린 시원 문명의 실체를 회복하고 완성하려는 거대한 하늘 섭리의 귀환임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문화인류학적 반증이라 하겠다. 우하량 여신상의 응시는 반만년 전의 고대사와 현재를 잇는 질문이다. 인류 문명의 출발점에 새겨진 여성의 상징, 그리고 그 기억이 오늘날 우리 시대의 새로운 섭리와 만나는 지점은 어디인가. 홍산의 여신묘는 우리로 하여금 그 잃어버린 문명의 언어를 다시 읽게 만든다.

 

고기훈 박사(한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