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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 전 재산 던진 78세 노인, 연 3억 매출로 깨운 ‘야생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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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죽었어야 할 몸” 폐교 잔해 속으로 자신을 던진 78세 노병, 매달 사료비 240만원 감당하는 짠물 노동의 가치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노년의 삶은 흔히 부양이나 은퇴라는 수동적인 단어 속에 갇힌다. 하지만 여기 마지막 남은 전 재산을 털어 폐허에 자신을 유폐시킨 뒤 단 2년 만에 연 매출 3억원의 현역으로 부활한 한 남자가 있다. 안락한 소멸 대신 치열한 생존을 택한 78세 박용진 씨의 이야기는 단순히 성공한 귀농의 기록을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자생의 진짜 무게가 무엇인지 묻는다.

강원도 대관령의 폐교 운동장에서 80마리 양 떼의 끼니를 챙기며 스스로의 노년을 경영하는 78세 박 씨의 풍경이다. 골라듄다큐 화면 캡처
강원도 대관령의 폐교 운동장에서 80마리 양 떼의 끼니를 챙기며 스스로의 노년을 경영하는 78세 박 씨의 풍경이다. 골라듄다큐 화면 캡처

 

강원도 강릉의 한 퇴락한 교정에는 이제 학생들 대신 양 떼의 울음소리와 농장을 찾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교차한다. 이른 새벽 박 씨의 하루는 양들의 끼니를 챙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80마리 양 떼의 허기를 모두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모닝빵에 치즈와 햄을 곁들여 조촐히 자신의 끼니를 때운다. 안락한 식탁 대신 폐교 한편의 거처에서 서둘러 해결하는 이 투박한 루틴은 그가 버려진 공간에서 일궈낸 억대 매출의 가장 정직한 동력이다.

 

그의 자생력은 지독할 정도로 치열하다. 영하의 기온이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박 씨는 산속 계곡을 찾는다. 최소한의 의복만 걸친 채 얼음장 같은 계곡물에 몸을 던지는 냉수마찰은 죽음의 문턱을 넘어온 그가 스스로를 단련하는 날 선 수행이다. 생사의 고비까지 갔던 몸을 다시 깨우는 과정과도 같은 이 행위는 78세 노장을 여전히 펄펄 끓는 야생의 기운으로 존재하게 하는 그만의 건강법이다.

영하의 기온에도 계곡물에 몸을 던지는 이 의식은 사선에서 돌아온 노병이 자신의 원시적 생존 본능을 증명하는 방식이다. 골라듄다큐 화면 캡처
영하의 기온에도 계곡물에 몸을 던지는 이 의식은 사선에서 돌아온 노병이 자신의 원시적 생존 본능을 증명하는 방식이다. 골라듄다큐 화면 캡처

 

외환 금융위기(IMF) 당시 사업의 근간이 무너졌던 박 씨는 절벽 끝에서 이곳을 찾았다. 실패의 충격은 육신까지 갉아먹었다. 죽기 직전까지 병원 신세를 지며 “벌써 죽었어야 할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박 씨는 병든 육신을 이끌고 막다른 골목이었던 대관령의 폐허를 찾았다. 안락한 노후 대신 잔해만 남은 폐교의 흙더미 속으로 자신을 던졌을 때 그것은 희망이라기보다 마지막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노인은 인자한 할아버지가 아닌 철저한 경영자로 남았다. 양 80마리를 유지하기 위해 매달 쏟아붓는 사료비만 240만원. 이 무서운 현금 소모를 견뎌내는 힘은 스스로 축사를 고치고 무너진 교실을 손수 다듬는 짠물 노동에서 나온다.

아무도 찾지 않던 폐허를 일깨운 거인(巨人)의 뒷모습에는 세상이 정한 은퇴의 매뉴얼을 거부한 이의 단단한 고집이 서려 있다. 골라듄다큐 화면 캡처
아무도 찾지 않던 폐허를 일깨운 거인(巨人)의 뒷모습에는 세상이 정한 은퇴의 매뉴얼을 거부한 이의 단단한 고집이 서려 있다. 골라듄다큐 화면 캡처

 

특히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낙오될 뻔했던 새끼 양 ‘메리’와의 인연은 각별하다. 어느덧 성인 양이 되었지만 여전히 박 씨를 엄마처럼 따르는 메리와의 교감은 박 씨가 동물 사육에 전념하게 된 하나의 동기가 됐다. 폐교를 체험형 양 농장으로 탈바꿈시키며 박 씨는 비로소 세상이 강요한 퇴장 명령을 스스로 거둬들였다.

직접 우유를 먹여 키운 양 메리와 교감하는 시간은 그에게 양 떼가 단순한 가축을 넘어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임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골라듄다큐 화면 캡처
직접 우유를 먹여 키운 양 메리와 교감하는 시간은 그에게 양 떼가 단순한 가축을 넘어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임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골라듄다큐 화면 캡처

 

그것은 타인에게 내 밥그릇을 맡기지 않겠다는 철저한 홀로서기였다. 스스로 기술을 배우고 양들과 부대끼며 개척한 이 일터는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구축한 가장 강건한 방어막이다. 우리가 78세 현역에게서 목격하는 것은 단순히 성공한 귀농인의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육체의 노화보다 무서운 정신적 은퇴를 거부하는 묵직한 야생의 정신이다.

 

“벌써 죽어야 할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있는데 무슨 욕심이 있겠냐”는 박 씨의 말은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가장 강렬한 집착을 보여준다. “양들과 어울려 죽는 날까지 즐겁게 사는 것 외에는 바랄 게 없다”는 그의 고백은 노장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세상이 정해둔 노년의 유통기한을 스스로 지워버리고 끝까지 현역으로 남겠다는 한 인간의 끈기 있는 승부수인 셈이다.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한 듯 환하게 웃는 박 씨의 웃음 뒤에는 억대 매출보다 값진 노년의 자부심이 서려 있다. 골라듄다큐 화면 캡처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한 듯 환하게 웃는 박 씨의 웃음 뒤에는 억대 매출보다 값진 노년의 자부심이 서려 있다. 골라듄다큐 화면 캡처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내 손으로 흙을 파서 밥을 벌어 먹겠다는 이 서늘한 의지는 성실함이 최고의 자산임을 시사한다. 인고의 삶 속에서 자신의 시간을 끝까지 홀로 책임지겠다는 한 남자의 단단한 집념이 만들어낸 치열한 자력의 흔적이다. 나이 듦이 쇠퇴가 아닌 또 다른 개척의 시간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며 오늘도 할아버지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