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부터 혼자 사는 고등학교 1학년 민준(가명·16)이 겪은 청소년 방임은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이른바 ‘쓰레기집’에 내버려둔 사례부터 학교에 보내지 않거나, 병원 치료를 제때 해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청소년 방임은 복지 사각지대로 지목되는 아동 방임 중에서도 특히 사각지대에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혼자서 생활할 수 있는 나이로 인식되는 탓이다. 방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도 법정에선 “부모로서 역할을 다했다”며 방임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19일 세계일보는 청소년 방임의 구체적인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유죄가 확정된 12~17세 대상 방임 사건의 1심 판결문 47건을 전수 분석했다. 전국 31개 도시에 흩어져 있는 해당 가정도 직접 방문했다. 취재 결과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는 물리적 방임이 38건으로 가장 많았다.
그중에서도 ‘쓰레기집’에 자녀를 방치한 사례가 18건으로 절반에 가까웠다. 보호자가 집안의 청결을 유지할 의지나 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두 딸의 아버지인 A씨는 자주 술에 취해 있었다. 아내는 어느 날부터 자꾸 길에서 쓰레기를 주워왔다. 불쾌한 냄새는 일상이 됐다. 구더기가 여기저기 들끓었다. 집에는 17세 큰딸과 지적 장애가 있는 15세 작은딸이 있었다.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4개월과 1년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법원은 “알코올의존증이나 배우자의 강박증 등이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한 원인이었던 점을 참작한다”면서도 “피해 아동들의 신체적·정서적 발달에 적지 않은 악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경우도 15건이나 됐다. 법원은 14세 아들이 56일간 무단결석하는 동안 이를 방치한 친모에게 “피고인이 의도적으로 피해 아동을 학교에 출석하지 않도록 한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친권자이자 양육 의무자로서 장기간 반복되고 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지 않았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아들이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다 잠들어 등교를 거른 것이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방임이라고 판단했다. 친모가 학교 관계자의 방문이나 전문기관의 상담을 일방적으로 거부한 것도 불리한 양형 사유로 참작됐다.
‘가정 학습’이 방임의 명분이 되기도 했다. 엄마 B씨는 중학교에 막 입학한 딸을 입학식 당일 두 시간만 학교에 보냈다. 그게 전부였다. 그해 11월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딸은 교실 대신 집에 머물렀다. B씨는 가정에서도 일부 교육을 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를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황으로 인정하면서도 유죄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중학생인 딸이 또래들과 어울려 교육받고 교우관계를 통해 사회적 유대를 형성할 기회 자체를 차단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재판부는 B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판결문에 담긴 47건은 수면 위로 드러난 사례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청소년 자녀가 있는 가정 셋 중 하나꼴로 방임이 일어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2023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아동종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2~17세 자녀를 둔 전국 약 2300가구 중 36.0%의 부모는 6개 방임 행위 중 최소한 하나 이상을 한 적 있다고 답했다.
체크리스트 항목에는 혼자 두면 안 되는 상황에서 혼자 있게 한 경우, 제대로 끼니를 챙겨주지 않은 경우,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경우, 술이나 약물에 취해 돌봄에 문제가 생긴 경우, 더럽거나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힌 경우, 애정 표현이나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자녀 나이가 어릴수록 비율은 낮아졌다. 9~11세는 33.4%, 6~8세는 22.4%, 3~5세는 10.8%, 0~2세는 4.7%였다. 자녀의 연령이 높을수록 방임이 더 빈번해지는 셈이다.
청소년 당사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10명 중 6명이 방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2024년 한국 청소년정책연구원이 전국 초중고 재학생 9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밤늦게까지 부모님(보호자) 없는 집에 있었던 적이 있다’고 답한 중학생이 65.3%, 고등학생이 58.6%로 드러났다. 직전 해 조사보다 중학생은 3.7%포인트, 고등학생은 1.8%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이외에도 ‘내가 식사를 못 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아파도 그냥 내버려둔다’ 등 다른 질문에서도 중고등학생이 초등학생보다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일상 속 깊이 파고든 청소년 방임을 포착하는 건 어렵다. 영유아 자녀에 비해 혼자 있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상처나 멍처럼 눈에 띄는 흔적이 없고, 이웃과 왕래가 거의 없는 고립된 가정에서 일어나는 방임 자체의 특성 때문에 외부에서 발견하기도 어렵다.
방임은 ‘하지 않는’ 방식으로도 나타나는 아동 학대다. 때리거나 폭언을 퍼붓는 다른 학대와 달리 ‘소리 없는 학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C씨는 “기본적 보호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여섯 자녀를 홀로 키운 엄마 C씨는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오후 7시쯤 집을 나선 C씨는 다음날 오전에 집에 들어왔다. 12세 큰딸도 있고, 여차하면 가까이 있는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보살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 C씨는 조금 더 길게 쉬고 싶었다. 이번에는 집을 이틀 정도 비웠다.
재판부는 C씨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자칫 아동의 생명·신체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아동을 방임하는 행위는 죄질이 나쁘다”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D씨는 가출한 딸을 찾지 않았다. 딸은 가출 후 1년 가까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사이 친모인 D씨는 이사를 했다. 아들이 폭행 사건에 휘말리는 바람에 원래 살던 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전화번호도 두 번이나 바꿨다. 생활고 속에서 딸까지 홀로 기르기는 역부족이었다. 여동생이 딸을 돌보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재판부는 D씨가 딸이 어디에서 생활하는지 찾아보려 노력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새집의 주소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바뀐 전화번호도 알려주지 않았다. 딸의 담임 선생님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딸을 맡고 있는 동생에게 양육비를 주거나 잘 돌봐달라는 당부도 없었다. 재판부는 D씨에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을 받은 부모 당사자가 방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수였다.
E씨는 두 번째 남편과 새살림을 차렸다. 아들만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기존 거처에 남겨뒀다. 내년이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이 다 컸다고 생각했다. 집도 치워주고 밀린 빨래를 해주며 아들과 만났다. 용돈도 줬다. E씨는 자신이 방임을 저지르고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법원에 어머니의 역할을 충분히 다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E씨와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E씨는 아들의 유일한 보호자였지만, 미성년자인 아들 혼자 집을 지킨 날이 수두룩했다. 아들은 경찰한테 ‘엄마를 일주일 정도 전에 본 것 같고 실종 신고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말도 했다. 이런 생활은 다섯 달 넘게 유지됐다. E씨가 치워줬다던 아들의 방 안에는 박스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재판부는 E씨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3년간 아동 관련 기관의 취업도 제한했다.
취재팀은 방임이 발생했던 집에서 E씨 모친을 만났다. 그는 “(외손자가) 혼자 그렇게 오래 있지 않았다. 엄마가 아들을 보러 자주 왔다 갔다 했다”며 친모를 두둔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피해자의 누나가 신고한 데 대해 “(외손녀가) 정신질환이 심했다”며 “그런데 그 말을 (경찰이) 그대로 듣고 와서 조사했다”고 억울해했다.
방임을 발견하더라도 적절한 조처를 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동복지법은 방임을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행위’로 규정하지만, ‘소홀히’라는 기준 외에 구체적 매뉴얼이 부족해 신고를 받은 현장에서의 실무적 대응도 어렵다.
한국아동복지학회장을 맡고 있는 김진숙 한양사이버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경계가 굉장히 불분명하기 때문에 전문가라 할지라도 혼자서 판단하기보다는 전문가들이 모여 같이 논의하면서 방임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생존권을 침해할 정도의 심각한 행위에 대해서만 학대나 방임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유엔이 생존권을 포함해 보호권과 발달권, 참여권을 아동의 4대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듯이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당연하게 보장받아야 하는 부분이 침해되면 이것까지도 방임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