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기대감에 글로벌 증시가 호황을 보이는 것과 달리, 경제 현실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미·이란 간 긴장 완화 신호가 시장의 낙관론에 불을 지폈지만, 에너지 업계와 경제 전문가들은 오히려 지금의 상황이 ‘근거 없는 자기기만’에 가깝다며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18일(현지시간) 에너지 업계와 경제학자,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전망을 종합해 지금의 시장 낙관론이 얼마나 위험한지 짚었다.
WP는 미·이란 긴장 완화 신호가 에너지 충격과 경기침체 공포 해소 기대를 키웠지만, 현장의 시선은 다르다고 전했다.
문제의 핵심은 시장과 현실의 위험한 간극이다. 현재 투자자들이 공급망 붕괴와 조정 가능성을 인지하면서도 당장의 호황에 올라타려는 심리가 강하다는 것이다. 투자회사 파인트리 매크로 창업자 리테쉬 자인은 이를 두고 “조정이 올 것을 알면서도 지금을 즐기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지아공대 티보르 베셰데스 교수는 “해협을 연다고 원유가 수도꼭지처럼 쏟아지는 게 아니다”라며 “시장이 아직 전쟁 중이란 사실을 잊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시장과 알고리즘이 단기적인 외교 뉴스에만 즉각 반응하면서, 몇 주, 몇 달 뒤에 닥칠 충격은 외면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 파티 비롤은 “어떤 나라도 이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현재 상황을 “근거 없는 자기기만”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 에마 애쉬포드도 “사람들은 상황이 곧 해결될 것이라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며 “결국 시장과 현실은 다시 맞부딪힐 것”이라고 했다.
닐 크로스비 스파르타 석유 리서치 헤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원유 공급 위험은 거의 없었는데도 선물이 130달러까지 갔다. 지금은 세계 원유의 20%가 위험에 처해 있는데 선물이 꿈쩍도 안 한다. 미친 상황”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출구를 찾을 것이라는 기대와 알고리즘이 만든 ‘전쟁의 안개’가 가격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장의 기대와 달리 에너지 위기로 인한 균열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유럽은 수 주 내 항공유 부족 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고, 급등한 비료 가격은 내년 식량 가격 상승을 부채질할 전망이다. 플라스틱 원료 부족은 사실상 전 산업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베트남·방글라데시 같은 생산 기지는 에너지 비용 급등으로 멈춰 설 위기에 처했다.
설령 외교적 돌파구가 마련되더라도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손상된 에너지 인프라와 뒤틀린 물류망을 복구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당시에도, 전쟁이 끝난 뒤 생산량을 정상화하는 데는 수년이 걸렸다.
퀸시연구소의 아미르 한자니 이사는 에너지 인프라를 ‘세계 경제의 관상동맥’에 비유하며 “시장은 비축분으로 버틸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만일 전쟁이 재개되고 인프라에 대한 추가 공격이 감행된다면, 이는 세계 경제를 마비시킬 만큼 공급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