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울타리에는 고사리손으로 직접 그린 형형색색의 벽보가 붙었다. “운동회 소음으로 주민 여러분께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이웃을 배려하는 아이들의 기특한 마음이 담겼지만, 한편으로는 일 년에 단 한 번뿐인 축제조차 ‘민폐’로 낙인찍힐까 눈치를 봐야 하는 우리 교육 현장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21일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아이들의 목소리는 소음이 아니며, 운동회는 사과할 일이 아닌 정당한 교육활동”이라고 강조하며 이른바 ‘어린이 목소리는 소음이 아니다 법’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천 원내대표는 최근 경기도 초등학교의 사례를 언급하며 “학생들이 이웃을 배려하자는 취지로 자발적으로 만든 벽보라고 하지만, 본래 운동회는 초등학생의 사회성과 협동력을 기르는 필수적 교육활동으로 주변의 눈치를 보며 사과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학교 인근 아파트 단지인 이른바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를 선호하면서도 학교 소음에는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세태에 대해 “지나친 이기주의”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교육 현장은 이미 무분별한 민원과 공권력의 개입으로 신음하고 있다. 천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 운동회’ 관련 112 신고 350건 중 무려 345건(98.5%)에 경찰이 출동했다. 아이들의 축제가 치안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한 셈이다.
이러한 ‘침묵 강요’는 일상적인 체육 활동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천 의원실이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26년 3~4월 기준 전국 초등학교 6189곳 가운데 312곳이 교과 시간 외 축구·야구 등 스포츠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특히 부산은 30%가 넘는 학교가 활동을 제약하고 있으며, 서울은 2024년 14%에서 올해 16%대로 제한 비율이 매년 상승하는 추세다. 사고 발생 시 책임 문제를 부담으로 느끼거나, 주민 민원을 고려해 소음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또 지난해 학교 운동회 관련 112 신고 350건 중 98.5%에 경찰이 출동한 현실은 교육 현장이 이미 ‘치안 행정’의 통제 아래 놓였음을 보여준다.
학교가 아이들의 발을 묶은 이유는 명확하다. “다치면 책임질 거냐”는 안전 책임론과 “왜 특정 학생들만 운동장을 쓰느냐”는 식의 학부모 민원이다. 현직 교사들은 “이슈가 되면 ‘운동시키라’고 압박하고, 정작 사고가 터지면 교사 개인이 모든 책임을 지는 구조”라며 비명을 쏟아내고 있다. 보호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에서 교사들이 본능적으로 ‘무사안일’ 교육을 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지난 13일 대정부질문에서 “단 하나의 학교에서도 축구가 금지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단호한 조치를 약속했다. 최 장관은 저학년 신체 활동 확대를 위한 교육과정 개정 취지를 언급하며 “현장을 점검해 아이들의 활기찬 함성을 되찾겠다”고 밝혔다.
개혁신당은 ‘소음·진동관리법’을 개정해 어린이의 목소리를 소음 규제 대상에서 명시적으로 제외하고, ‘112 신고처리 규칙’ 등 내부 지침 개정을 통해 무분별한 경찰 출동을 막을 방침이다. 이는 2010년 아이들의 소리를 소음 분류에서 제외한 독일 베를린시와 일본의 입법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