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의 재산을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치매공공신탁제도’가 도입된다. 판단 능력이 저하된 고령층이 사기를 당하는 등 경제적 피해를 입지 않도록 막는다는 취지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22일부터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21일 밝혔다.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 시범사업은 공공기관(국민연금공단)이 어르신의 재산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보호하는 공공신탁 기반의 재산관리 지원사업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치매 환자가 보유한 자산 규모는 약 154조원(2023년 기준)으로 추정된다. 판단 능력이 저하된 치매 환자는 사기, 재산 갈취 등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최근 요양원 입소 환자의 재산을 임의로 사용하는 경제적 학대나 재가 치매 노인의 임대료 체납 등 치매 환자의 재산 관리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제기돼왔다.
지원 대상은 치매 또는 경도인지장애로 재산 관리에 어려움이 있거나 향후 어려움이 예상되는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소득 하위 70%)로, 별도 이용료 없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65세 미만 조기발병 치매 환자라도 차상위계층이나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에 해당하면 재산관리 위험도를 고려해 예외적으로 무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기초연금을 받지 않는 고령자가 이용할 경우에는 위탁 재산의 연 0.5% 수준의 이용료를 부담해야 한다.
위탁 대상 재산은 예금,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 주택연금 등 현금성 자산으로 제한된다. 부동산과 주식 등 실물자산은 포함되지 않으며 위탁 가능한 재산 규모는 최대 10억원이다.
신청은 본인 또는 가족 등이 국민연금공단 지사에 방문해 신청하거나 요양시설, 치매안심센터 등 치매유관기관의 의뢰를 통해 할 수 있다. 공단 7개 지역본부(서울북부, 서울남부, 경인, 대전·세종, 광주, 대구, 부산)에서 상담 받을 수 있다.
치매 진단 전 경도인지장애자 등은 본인이, 치매 진단 후에는 후견인이 계약을 맺는다. 치매 환자의 경우 인지능력 저하로 계약 유효성을 둘러싼 법적 분쟁 가능성이 있어 원칙적으로 후견인 선임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치매공공후견보다 간이한 절차가 될 수 있도록 검토 중이다.
접수 후에는 공단 지역본부 담당자가 대상자 여부를 판단하고, 우선 지원 대상자를 중심으로 재산 지출 계획 및 보유 자산 등을 파악한다.
담당자는 상담 결과로 대상자에게 맞는 재정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토대로 공단과 신탁계약을 맺는다. 계약서엔 재정지원계획을 비롯해 신탁 개시 시점, 지원인·대리인, 잔여재산 처리 등 관리·지출에 관한 주요 사항도 담긴다. 치매 질환 특성을 고려해 계약 기한은 별도로 정하지 않는다.
공단 지역본부는 신탁이 개시되면 재정지원계획에 따라 생활비, 요양비 등을 배분한다. 지급은 정기 지출, 용돈 등에 따라 계좌이체 등 형태로 이뤄진다.
계획에 없는 특별 지출이나 계약 해지를 요청할 경우 외부 전문가가 과반수로 참여하는 공단 산하 치매안심재산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승인 여부가 결정된다. 치매 어르신의 재산이 제3자를 위해 부적절하게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사망 후 남은 재산은 배우자 등 법적 상속인에게 지급된다. 무연고 등으로 상속인이 없을 경우 민법 제6절에 따른 상속인부존재 처리 절차를 진행한다.
공단은 월별 지출 내역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반기마다 최소 1회 이상 대상자를 방문해 상태를 점검한다. 이상 징후가 확인되면 불시 점검도 실시한다. 재산 관리 결과는 대상자와 가족에게 정기적으로 통보된다.
친족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친족은 ‘지원인’으로 참여해 지출 내역 확인을 돕거나 ‘대리인’으로 의료·요양 관련 의사결정을 대신할 수 있다. 다만 재산 관리의 책임과 권한은 공공기관이 맡는다. 대상자가 사망할 경우 잔여 재산은 배우자 등 법정 상속인에게 지급된다. 상속인이 없을 경우 민법에 따른 절차를 거쳐 정리된다.
정부는 이번 제도를 통해 치매 환자의 재산이 본인 의사와 필요에 맞게 사용되도록 하고, 가족에게 집중됐던 재산 관리 부담을 공공이 분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임을기 노인정책관은 "국가가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웠던 치매 어르신의 재산 관리에 동행하며 든든한 보호막이 될 것"이라며 "어르신들이 본인의 재산을 안전하고 건강한 노후를 위해 온전히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 정착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