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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권 책 속에 파묻힌 ‘문화계 홍길동’… “독서로 매일매일 소확행” [나의 삶 나의 길]

‘국내 최대 장서가’ 최진용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

‘문화부 레전드’ 3인방 중 막내
1970년대부터 모아온 책이 10만권 넘어
가난했던 유년 도서관 봉사하며 전환점
문화부 공무원으로 거장들 만나려 독서

傘壽 앞두고도 ‘애서가’의 길
매일 ‘책 사지 말자’ 다짐해도 안지켜져
매달 수입 20% 내에서만 책 구매 원칙
교보문고 수시로 드나들어 ‘최대 고객’

‘코로나 블루’도 비껴간 충만한 삶
“혼자 있는 고독한 시간 공허 아닌 충만
책 읽는 것도 즐겁고 바라보는 것도 흐뭇
평생 모은 책 공개 ‘라키비움’ 세우고파”

문화예술계의 연배가 있는 주요 인사들 사이에 회자하는 ‘문화부 레전드’ 3인방이 있다. 고(故) 이종덕(1935∼2020) 예술의전당 사장, 김동호(89)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최진용(79)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다. 모두 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 관료 출신으로 인생 2막에서 문학·미술·무용·연극·영화 등 예술 전반에 대한 식견과 인맥을 바탕으로 현장을 누빈 문화계 원로 인사다. 이 전 사장은 타계하기 전까지 연예예술 분야에서, 김 전 위원장은 최근 생애 첫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를 개봉해 영원한 ‘영화 청년’으로 불린다.

최진용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가 지난 16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자택 책더미에 쌓여 그의 책 사랑, 책을 모으게 된 경위와 많은 책을 활용할 방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최 전 대표는 “제게 친구들이 ‘집에는 책이 가득, 앞마당에는 꽃이 가득, 밖에 나오면 친구가 가득하니 부러운 인생’이라고 말한다”며 활짝 웃었다. 남정탁 기자
최진용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가 지난 16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자택 책더미에 쌓여 그의 책 사랑, 책을 모으게 된 경위와 많은 책을 활용할 방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최 전 대표는 “제게 친구들이 ‘집에는 책이 가득, 앞마당에는 꽃이 가득, 밖에 나오면 친구가 가득하니 부러운 인생’이라고 말한다”며 활짝 웃었다. 남정탁 기자

3인방 중 막내인 최 전 대표는 산수(傘壽)를 앞둔 지금도 일주일에 20여 차례 공연장과 전시장을 찾는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고 해서 ‘문화계 홍길동’으로 통한다. 그런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타이틀이 있다. ‘국내 최대 장서가’다. 2026년 4월 현재 약 10만권의 문화예술분야 서적을 보유하고 있다. 누가 일일이 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이 평생을 한두 권씩 차곡차곡 사 모아 보유한 최고의 기록이라고 주변에서 말한다. 1970년 후반부터 서점을 제집 드나들 듯이 책을 사 모은 데다 애서가라는 소문이 나면서 주변에서 책을 선물하는 지인들이 많아져 지금의 규모가 됐다. 주변에서 TV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며 그의 남다른 책 사랑을 이야기한다.

지난 16일, 최 전 이사장이 책더미에 파묻혀 산다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 그의 집을 찾았다. 4호선 수유역에서 마을버스로 몇 정거장을 지나면 새소리 들리는 산동네 이층집이 나온다. 종로구 명륜동에 25년을 살다가, 책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늘어나자 5년 전 책 보관 공간 확보와 집필 환경을 위해 이곳으로 이사했다. 집 안에 들어서자 거실은 물론 방마다 빽빽한 책장과 쌓아 올려진 책 기둥이 가득하다. 그야말로 책 천지다. 마주 앉자마자 물었다.

─책이 도대체 얼마만큼 있나.

“최근에 세어 보니 10만권이 넘는다. 수유동 이 집에 지하창고와 1층 거실, 2층 서재에 3만여권이 있다. 책 보관을 위해 대여한 인천 수장고에 5000여권, 고양시의 수장고에 6만권이 있다. 내가 봐도 놀랄 정도다. 처음 찾은 분들이 “책 장사를 하다가 망하셨어요─”라고 묻기도 한다. 왜 이렇게 많이 모으냐, 이 책을 언제 다 읽느냐고도 한다. 이 책을 다 읽으려면 매일 한 권씩 약 300년이 걸린다. 저는 정독하는 편이어서 한 달에 다섯권, 1년에 한 70권 정도 읽는다. 읽은 책을 언급해 달라고 하면 박지원의 ‘열하일기’, 김구의 ‘백범일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그리고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조지 오웰의 ‘1984년’을 주로 얘기한다. 읽지 못하는 책이라도 서문과 목차, 후기는 반드시 본다. 언젠가는 읽을 책이기 때문이다.”

─10만여권이나 모으게 된 계기와 그간의 과정은.

“일제강점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947년 황해도 해주에서 인천에서 내려와 막노동해야 했던 집안에 태어났다. 유년시절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살았다. 책이라고 해봐야 교과서가 전부였다. 연필도 형제들과 나눠 아껴 써야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의 권유로 학교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책과 만나는 행운을 갖게 됐다. 돌이켜보면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방과 후 도서관에 달려가 대출 업무와 독서목록 작성, 책 정리를 했다. 이때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 어린 마음에 행복했다. 공부는 그런대로 잘하는 편이었으나 가정 형편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도왔다. 내성적인 성격과 열등감으로 외톨이인 나에게는 책이 든든한 친구이지 버팀목이었다. 졸업 후 주경야독 끝에 1967년 당시 문화공보부 5급 행정직(현재 9급) 공채에 지원, 합격했다. 문화부 공무원이 업무상으로 문화예술계 내로라하는 거장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문단의 서정주, 박목월, 김동리, 구상, 황순원, 이은상, 무용 육완순, 김백봉, 강선영, 김천흥, 연극 김정옥, 미술 장우성, 이준, 이태원, 음악 성경린, 이혜구, 황병기, 김순애, 건축 김수근, 영화계 유현목 등 쟁쟁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고교 학력이 전부라 실력이 달려 이분들과 대화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문화예술 분야 책을 닥치는 대로 사서 읽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소설가 김동리 선생과 함께 지방출장을 갈 때, 선생님과 얘기를 하려면 그분의 대표작 ‘등신불’이나 ‘무녀도’ 정도는 읽어야 뭔 대화가 되지 않았겠나. 밤새워 읽었다. 그러고 나니 출장길에 김동리 선생님과 ‘인간의 구원과 희생이 종교적 깨달음’이라고 하는 등의 대화를 겨우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업무를 따라가기 위해 시작한 독서와 수집이 장서가의 출발점이 됐던 셈이다. 이후 동료들 사이에 책을 모은다는 소문이 퍼졌고, 1983년 출판문화협회로부터 ‘모범장서가’상을 받았다. 당시 약 3만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상을 받고 나니 나름 사명감(─)이 생겨 본격적으로 장서가의 길을 걷게 됐다. 현재 소장 도서의 약 80%는 다 제가 서점에서 골라 산 책이다. 나머지 20% 정도는 가깝게 지내던 예술가, 학자, 출판계 인사들이 보내준 것들이다.”

─책을 구입하는 데 원칙이 있다고.

“사고 싶은 책은 많고 경제력은 안 따라줘 제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매달 수입의 20% 내에서만 책을 산다. 현직에 있을 때는 급여 외에 과외로 얻는 수입, 예를 들면 시간외수당이나 연말정산 세금환급금은 꼭 책 사는 데 썼다. 지금도 각종 기관 회의수당이나 강의료는 책 구매에 쓴다. 책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골프는 아예 포기하고 살았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택시를 타지 않는다. 요즘도 아침에 일어나서 주기도문을 외듯 ‘오늘은 책을 사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웃음)”

─교보문고 광화문점 최대 고객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문화부 재직시절 당시 청사가 미 대사관 옆이라 인근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점심때 되면 살다시피 하며 책을 읽고 책을 샀다. 격무로 힘들다가도 서점만 찾으면 이상하게도 저절로 힐링이 됐다. 워낙 자주 방문하고 책을 많이 사다 보니 교보문고 35주년 기념행사 때 고객 대표로 제가 출협회장과 출판인회의 회장과 함께 축사를 할 정도였다. 지금도 광화문에 나가면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 늘 들른다.”

─책더미에서 묻혀 사는 삶은 어떤 것인가.

“코로나19 시절 많은 사람이 바깥활동이 제약을 받아 ‘코로나 블루’로 불리는 우울증을 겪었지만, 나는 전혀 답답하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나 같은 장서가는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혼자 있는 시간이 공허가 아니라 충만으로 바뀐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대화할 수 있는 존재들이 곁에 있다는 점은 큰 안정감을 준다. 많은 사람은 자기 서재를 갖고 싶어하지 않나. 특히 남자들의 로망이 아닌가. 나는 서재 차원이 아니라 개인도서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니 행복하다. 책을 읽는 것도 즐겁고 바라보는 것도 흐뭇하고 정리하는 것도 재밋거리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40년을 모아온 10만권의 문화예술분야 책을 일반에 공개하는 문화예술전문도서관을 세우고 싶다. 도서관이라고 하기보다는 그 이름을 라키비움(larchiveum)이라고 하고 싶다. 라키비움은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의 합성어다. 도서관 건립을 구체화하기 위해 이곳저곳 알아보고 있다. 때가 되면 이야기하겠다. 그때까지 책을 모으는 일은 계속할 것이다. 얼마나 더 늘어날지 나도 모르겠다.”

주변에서 즐겁게 사는 ‘문화계 올드보이’라 부른다. 행복한가.

“50여년을 문화예술인들 하고 어울리다 보니 아는 이들이 좀 많다. 문학, 미술, 연극, 무용, 영화 분야의 인연을 맺고 있는 분이 6000여명에 이른다. 수십년째 이어온 3∼4개의 독서모임을 이끌고 있고, 각 분야 예술인을 초대 공연하는 ‘레베랑스 문화살롱’ 대표로 활동하고, 문화부시절 인연이 된 시각장애인 지원 모임도 하고 있다. 이 나이에, 하루 평균 세 건 정도의 약속이 있다. 문화부 공무원시절부터 책상머리만 지키기보다 예술 현장을 발로 뛰던 버릇이 몸에 밴 탓에 아침에 눈만 뜨면 책 몇 권을 가방에 넣어 집을 나온다. 좋은 벗들과 공연과 전시도 보고 좋은 대화도 나누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BMW(버스+메트로+워킹)’를 이용하며 건강도 챙긴다. 나이 들어 주변에 외로움을 호소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난 외로울 시간이 없다. 황혼의 외로움이 건강을 해치는 큰 적인데, 집에 책이 많고 친구가 많으니 늘 즐겁다. 도서관을 찾아 책을 많이 읽고, 전시나 공연 많이 보고, 많이 걸으면 하루가 금방 간다. 그게 나의 ‘소확행’이다.”

 

최진용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는…

●1947년 인천 출생 ●인천 동산고·건국대 행정학과 졸업 ●연세대 행정대학원 수료 ●1994년 문화체육부 전통예술과장 ●1997년 문화체육부 감사담당관 ●1999년 국립극장장 ●2001년 월드컵대회조직위원회 기획조정국장 ●2003년 대한민국예술원 사무국장 ●2003년 모범장서가상 수상(출판문화협회) ●2004∼2014년 국제민속축제조직위원회(CIOFF) 한국위원 ●1983∼2005년 한국장서가협회 이사 ●2006년 노원문화예술회관 관장 ●2010∼2013년 의정부 예술의전당 대표 ●2016∼2018년 인천문화재단 대표 ●현 고서가협회 연구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