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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방송인 “못난 멜로니, 트럼프 배신”… 분노한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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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주재 러시아 대사 초치해 엄중 항의
미국·이탈리아 분열 노린 심리전 가능성

러시아의 대표적인 친(親)정부 어용 방송인이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를 향해 폭언을 퍼부었다가 양국 간 외교 마찰로까지 비화했다. 일각에선 러시아가 자국에 적대적인 서방 국가들을 서로 떼어 놓고 분열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려는 목적에서 이간질을 시도한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 20일(현지시간) 로마를 방문한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 시작에 앞서 깊은 상념에 잠겨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 20일(현지시간) 로마를 방문한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 시작에 앞서 깊은 상념에 잠겨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AFP,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안토니오 타야니 이탈리아 외교부 장관은 이날 로마 주재 러시아 대사관의 알렉세이 파라모노프 대사를 초치(招致)했다고 밝혔다. 이는 러시아 TV 프로그램 진행자가 최근 방송에서 멜로니를 모욕한 것에 대한 항의 차원이다. 타야니 장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극도로 심각하고 공격적인 발언이었다”며 “(모욕을 당한) 멜로니 총리에게 가장 강력한 연대와 지지 의사를 전한다”고 적었다.

 

이번 사태는 러시아의 유명 방송인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62)의 거친 입에서 비롯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로 알려진 솔로비요프는 프로그램 진행 도중 멜로니를 겨냥해 이탈리아어로 “인류의 망신거리” “사나운 짐승” “누구나 인정하는 바보” “못생긴 작은 여자” 등 폭언을 퍼부었다. 이어 러시아어로 “멜로니는 유권자를 배신한 파시스트 괴물”이라며 “그녀는 심지어 트럼프까지 배신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를 배신했다’라는 말은 앞서 교황 레오 14세를 향해 “범죄에 나약하고 외교는 형편없다”고 비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멜로니가 “용납할 수 없는 발언”이라고 일침을 가한 일을 지목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 지도자들 가운데 트럼프와 가장 잘 통한다는 평가를 받아 온 멜로니의 트럼프 비판을 두고 국제사회는 “매우 이례적”이란 반응을 나타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TV 프로그램 진행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 푸틴의 열렬한 지지자로 알려진 솔로비요프는 러시아의 대표적 친정부 방송인이다. 사진은 지난 2013년 솔로비요프가 푸틴에게서 훈장을 받는 모습. SNS 캡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TV 프로그램 진행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 푸틴의 열렬한 지지자로 알려진 솔로비요프는 러시아의 대표적 친정부 방송인이다. 사진은 지난 2013년 솔로비요프가 푸틴에게서 훈장을 받는 모습. SNS 캡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인 2022년 10월 집권한 멜로니 연립정부에는 러시아와 푸틴을 지지하는 극우 정당이 포함돼 있다. 러시아 정부는 이 점을 근거로 이탈리아가 서방의 반(反)러시아 대열에서 이탈할 가능성을 기대했다. 하지만 멜로니는 예상과 달리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및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적극 지원하는 편에 섰다. 전쟁이 4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이탈리아는 서방의 핵심 구성원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월28일 미국이 이스라엘과 손잡고 이란 공격에 나선 이후 서방에 심각한 균열이 일어났다. 트럼프는 “이란의 핵무기 보유 차단이 시급하다”며 유럽 동맹국들의 도움을 요청했으나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냉담한 기색이 역력하다. 더욱이 최고의 우방으로 여긴 이탈리아마저 “교황 비판은 용납할 수 없다”며 미국에 등을 돌리자 트럼프는 강한 분노과 더불어 배신감을 표시했다. 트럼프는 최근 이탈리아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멜로니에게 충격을 받았다”며 “용기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틀렸다. 내 생각과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