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외교안보 라인을 둘러싸고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정부는 “한·미 공조에는 이상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최근 흐름을 종합하면 양국 간 불협화음이 점차 표면화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지난해 11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발표된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협의가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양측 간 신뢰 기반이 약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안보·경제 등 이상기류 확산
22일 정부와 군 당국에 따르면 동맹 현안을 두고 미국 측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한·미동맹 현안에서 예전과는 다른 기류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미국은 쿠팡 문제에 대해 “미국 기업이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한·미 고위급 협의와 연계하는 모양새다. 경제·통상 의제가 우라늄 농축·재처리와 핵추진잠수함 등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상의 안보 협상과 맞물리는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양국은 해당 사안들을 포함한 민감한 전략 현안에서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미국 연방 하원 공화당 의원 모임인 ‘공화당 연구위원회’(RSC) 소속 의원 54명은 21일(현지시간) 강경화 주미대사에게 “한국에서 사업하는 미국 기업들에 대한 차별적 규제를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서한에서 의원들은 한미 경제 파트너십과 국가 안보 동맹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면서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차별적이고 정치적 의도가 담긴 조치를 하고 있다”며 우려를 제기했다. 이들은 최근 한미 무역합의에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을 차별하거나 불이익을 주지 않기로 합의한 내용이 포함됐다며 “한국 정부가 약속을 무시하고 미국 기업에 계속 불이익을 주고 있고, 이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관련 문제가 한·미 간 안보분야 협의에 영향이 없도록 관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는 쿠팡 관련 이슈가 한·미 간 안보 논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미국 측과 지속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며 “안보분야 합의 이행을 위해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는 안보 논의는 쿠팡 사안과 별개로 진전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쿠팡에 대한 조사도 국내법과 적법 절차에 따라 처리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군사분야도 쟁점 커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북한 ‘구성 핵시설’ 발언은 한·미 간 긴장을 한층 확산한 계기가 됐다. 정 장관은 지난달 국회에서 평북 영변과 강선에 더해 구성에도 고농축우라늄 시설이 존재한다고 언급했는데, 미국은 이달 초부터 위성을 통해 수집한 일부 대북 정보 공유를 제한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가에서는 해당 발언으로 그간 누적된 한·미 간 이견이 표면화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미동맹의 근간인 군사분야에서도 양측 간 이견이 노출되고 있다. 비무장지대(DMZ) 출입 승인권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현재 DMZ 관할권은 유엔군사령부가 갖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국회에선 비군사적·평화적 목적에 한해 우리 정부가 출입 권한 등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법안이 제출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 장관이 “영토 주권 차원에서 이를 적극 행사해야 한다”고 하고, 유엔사가 정전협정 위배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내비치면서 한·미 간 시각차가 두드러졌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주한 미 공군의 서해 훈련과 미·중 대치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졌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중국 전투기들과 대치 상황이 발생했던 지난 2월 주한미군의 서해 공중 훈련과 관련, 사과를 했다는 언론보도를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측과의 다층적 소통 강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 관료사회가 실제로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를 신속히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백악관뿐 아니라 국무부, 에너지부 등 실무라인과의 소통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야권, ‘정보공유 제한’ 공세
정치권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정 장관과 국방부에 대한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방부가 어제(21일) 세 줄짜리 반박문을 냈지만 핵심은 비켜가는 비겁한 내용”이라며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달 10일과 11일 국방부 청사를 방문한 사실이 있는지 명확히 밝히라”고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2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와 국방위원회 전체회의를 단독으로 소집키로 했다. 다만 이번 일정이 여야 간사 간 합의 없이 잡히면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상임 위원들과 통일·국방장관은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