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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 제지사 3년10개월 간 단 한 번의 실패없이 ‘짬짜미’…과징금 3383억 부과 ‘철퇴’

한솔제지 등 6개 제지사, 조직적 담합
공정위 역대 담합 사건 중 5번째 규모
“단 한 번의 실패 없이 합의대로 가격↑”
공정위, 20년 만에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

국내 인쇄용지 판매시장에서 95% 점유율을 차지하는 6개 제지사들이 3년10개월 동안 조직적으로 판매가격을 담합하다 적발돼 3383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사건에 부과한 과징금 중 다섯 번째로 큰 규모다. 이들은 본인 명의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등 은밀하게 담합을 실시하며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합의된 대로 가격을 올렸다. 이들의 조직적인 ‘짬짜미’로 인쇄용지 판매가격은 약 71% 올랐고, 소비자들 및 중소 출판업계에 피해가 전가됐다.

 

공정위는 6개 인쇄용지 제조·판매사들이 2021년 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인쇄용지 전제품의 가격 인상을 합의하고 실행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향후 법위반 행위 금지명령,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 등)과 함께 과징금 총 3383억원을 부과했다고 23일 밝혔다. 사업자별로는 한솔제지 1425억8000만원, 무림피앤피 919억5700만원, 한국제지 490억5700만원, 무림페이퍼 458억4600만원, 홍원제지 85억3800만원, 무림에스피 3억470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공정위는 한국제지와 홍원제지 2개 법인은 검찰에 고발했다. 인쇄용지는 문서, 책, 잡지, 포스터 등 다양한 인쇄물에 사용되는 종이를 말한다.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뉴시스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뉴시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은 담합 기간 동안 정기적·비정기적으로 최소 60회 이상 모여 총 7차례에 걸쳐 인쇄용지 기준가격을 인상하거나 할인율을 축소했다. 인쇄용지 판매가격은 기준가격에서 기준가격×할인율을 제외해 산출된다. 공정위는 “한 번의 실패도 없이 합의된 대로 가격을 인상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담합 과정은 은밀하고 주도면밀하게 이뤄졌다. 6개 제지사들은 가격경쟁이 심화하고 2020년 이후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제조원가가 상승하자 이윤 극대화 목적으로 가격담합에 나섰다. 담합을 주도한 제지사 임직원들은 짬짜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연락 과정에서 본인 명의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근처 공중전화, 식당전화, 타 부서 직원의 휴대전화 등을 이용했다. 또 연락처는 별도 종이에 이니셜, 가명 등으로 메모하기도 했다. 이들은 거래처에 가격 인상을 먼저 통보하는 업체에 거래처의 반발이 집중될 수 있는 점을 감안해 통보 순서도 합의했는데, 합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동전, 주사위 등을 던져 순서를 결정하기도 했다.

 

이들의 국내 인쇄용지 판매시장 점유율이 95%(2023년 기준)에 달한 만큼 소비자와 중소 출판업체들은 고스란히 가격 인상의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실제 담합 기간 동안 인쇄용지 판매가격은 t당 84만1000원(2021년 2월)에서 t당 143만9000원(2024년 12월)으로 평균 71% 껑충 뛰었다. 공정위는 “해당 사업자들은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반면 그로 인한 피해는 중간 유통사를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됐다”고 지적했다. 제지사 6곳에 부과된 과징금 규모는 공정위가 그간 부과했던 과징금 중 5번째로 큰 규모이고, 제지담합 사건 중 최대다.

 

공정위가 20년 만에 이례적으로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을 부과한 점도 주목된다.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이란 담합을 통해 형성된 가격을 파기하고, 담합 이전 상태로 돌아가 각 업체 스스로 가격을 다시 결정하도록 하는 시정조치를 말한다. 공정위는 마지막 7차 합의 이후 기준가격이 변경되지 않은 상태이고, 아직 합의가 유지되는 점을 감안해 해당 명령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6개 제지사는 담합 전 경쟁을 회복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독자적으로 재결정하고 향후 3년간 반기마다 변경 내역을 보고해야 한다. 공정위가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을 내린 건 2006년 4월 밀가루 담합 이후 처음이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은 “이 사건은 국내 인쇄용지 판매시장에서 은밀하게 지속되어 온 대형 제지사들에 의한 가격 담합의 폐해를 시정한 것으로 중동전쟁의 충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쇄업체·출판업체 그리고 중소 유통업체들의 부담 완화에 기여할 것”이라면서 “국민들의 교육비, 도서구입비 등 생활비의 안정을 생활비 인상을 가져오는 독과점 사업자의 담합 소지를 봉쇄해서 경쟁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