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부터 트위터(현 X)에서 일본인들의 시위 관련 글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그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전했고, 그들 역시 한국 시민들을 시위의 ‘선배님’이라 부르며, 우리가 지난해 계엄에 맞서 광장에서 했던 모든 행동을 존중한다는 말을 전해왔다. 일본 언론에서는 잘 보도되지 않아 외롭고, 그럼에도 서로 이어져 있어 뜨거운 그들의 활동을 나는 그렇게 지켜보기 시작했다.
지난 8일 도쿄 지요다구 국회의사당 앞에는 시민 2000여명이 응원봉을 든 채 모였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지고, 에스파의 ‘위플래시’에 맞춰 구호가 이어졌다. 이들이 지키려는 건 평화헌법 9조다. 2월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자민당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자위대의 법적 근거 마련을 내걸고 개헌에 시동을 걸자, 2월 말부터 네 차례 집회에 4만명이 넘게 모였고, 4월19일에는 전국 80여곳에서 ‘평화헌법을 지키는 4·19 대행동’이 동시에 열렸다.
한국의 시위 문화가 이웃 나라에 옮겨 심긴 건 우연이 아니다. K팝의 세계적 확산과 함께, 한국 청년들이 광장에서 어떻게 분노하고 어떻게 웃었는지가 같이 번져갔다. 투쟁가 대신 응원가를, 비장한 깃발 대신 응원봉을 든 집회. 힙합 비트 위에 구호를 얹는 진행자. 폭력 없이도 뜨겁고, 엄숙하지 않아도 단단한 그 방식은 동아시아 시민들에게 ‘저항도 즐거울 수 있다’는 감각을 선물했다. 이는 한국 시민이 써 내려간 또 하나의 한류였다.
설령 이번에 개헌을 막지 못하더라도 이 광장들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2030이 처음으로 “주권자는 우리”라는 말을 자기 입으로 발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각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한 번 광장을 경험한 사람은 다음 선거에서도, 다음 뉴스 앞에서도 더는 이전과 같은 자리에 있지 않다. 지금의 불씨는 이전과는 다른 일본을 상상하게 한다.
무엇보다 뭉클한 건 아이돌과 아니메를 사랑해 온 이들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먼저 거리로 나섰다는 사실이다. 현실을 모른다며 오래 무시당해 온 K팝 덕후와 오타쿠들이, 정작 자신들이 품어온 세계의 가장 깊은 가치인 사랑의 힘으로 세상을 지킨다는 믿음을 들고 광장에 섰다.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는 감각이 평화를 지키려는 마음으로 자라난 것이다. 그들이 든 응원봉의 불빛 속에서 사랑과 용기는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고, 그 빛 아래서 일본 시민들이 부쩍 가까워짐을 느꼈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