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점유율이 95%에 달하는 6개 인쇄용지 제조·판매사(제지사)들이 약 4년간 조직적으로 판매가격을 담합하다 적발돼 3300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됐다. 경쟁당국이 담합 사건에 부과한 과징금 중 다섯 번째로 큰 규모다. 이들이 담합에 나서면서 인쇄용지 판매가격은 약 71% 올랐고, 소비자 및 중소 출판업체에 피해가 전가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6개 제지사들이 2021년 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인쇄용지 전 제품의 가격 인상을 합의하고 실행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향후 법위반 행위 금지명령,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 등)과 함께 과징금 총 3383억원을 부과했다고 23일 밝혔다. 사업자별로는 한솔제지 1425억8000만원, 무림피앤피 919억5700만원, 한국제지에 490억5700만원 등의 과징금이 부과됐고, 한국제지와 홍원제지 법인은 검찰에 고발했다. 인쇄용지는 문서, 책, 잡지, 포스터 등 다양한 인쇄물에 사용되는 종이를 말한다.
이들은 담합 기간 최소 60회 이상 모여 총 7차례에 걸쳐 인쇄용지 기준가격을 인상하거나 할인율을 축소했다. 공정위는 “한 번의 실패도 없이 합의된 대로 가격을 인상했다”고 밝혔다.
6개 업체는 은밀하고 주도면밀하게 담합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제지사 임직원들은 담합 사실을 숨기기 위해 연락 과정에서 본인 명의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근처 공중전화, 식당전화, 타 부서 직원의 휴대전화 등을 이용했다. 또 연락처는 별도 종이에 이니셜, 가명 등으로 메모하기도 했다. 이들은 거래처에 가격 인상을 먼저 통보하는 업체에 거래처의 반발이 집중될 수 있는 점을 감안해 통보 순서도 합의했는데, 합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동전, 주사위 등을 던져 순서를 결정하기도 했다.
6개 업체의 국내 인쇄용지 판매시장 점유율이 95%(2023년 기준)에 달한 만큼 소비자와 중소 출판업체들은 가격 인상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담합 기간 인쇄용지 판매가격은 t당 84만1000원(2021년 2월)에서 t당 143만9000원(2024년 12월)으로 평균 71% 껑충 뛰었다.
공정위는 20년 만에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도 부과했다. 이 명령은 담합을 통해 형성된 가격을 파기하고, 담합 이전 상태로 돌아가 각 업체 스스로 가격을 다시 결정하도록 하는 시정조치를 말한다. 6개 제지사는 담합 전 경쟁을 회복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독자적으로 재결정하고 향후 3년간 반기마다 변경 내역을 보고해야 한다.
공정위는 이날 열린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태스크포스(TF)’에서 ‘반복담합 근절방안’도 발표했다.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국가계약법상 입찰참가자격제한 제도를 입찰담합 외 가격담합에도 적용되도록 확대하고, 자격제한 기간도 늘리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면서 “건설·부동산에 적용되는 담합 반복 가담자에 대한 등록·허가 취소 제도를 다른 업종으로 넓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