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 ‘구성 핵시설’ 발언 이후, 한·미 간 대북 정보공유가 일부 제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민감한 정보가 공개됐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미국이 제공하던 핵심 정보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동맹의 핵심 자산인 ‘정보’가 흔들릴 경우, 북한 위협 대응 체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
한·미 동맹은 위기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대응 수단으로 꼽힌다.
그러나 정보 공유라는 핵심 축에서는 양국의 이해관계가 훨씬 민감하게 충돌한다. 작은 균열이 발생할 경우 예상보다 훨씬 큰 후폭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무엇이 문제였나…‘구성·90% 우라늄’ 논란
정 장관이 지난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했던 ‘구성 핵시설’ 발언과 관련된 대북 정보공유 제한이 처음 거론된 것은 지난 17일.
이때는 정 장관만 논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며칠 만에 이재명 대통령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안규백 국방부 장관, 성일종 국회 국방위원장,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등이 줄줄이 언급됐다. 판이 커진 것이다.
정 장관의 지난달 국회 외통위 발언 내용이 무엇이었기에 이같은 논란이 불거진 걸까. 해당 내용을 다시 살펴보자.
당시 정 장관은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이사회 보고를 거론하며 “영변과 구성·강선에 있는 우라늄(HEU) 농축시설, 이란은 이번에 미국의 폭격으로 파괴한 것이 60% 농축우라늄인 데 비해 북의 농축우라늄은 90%짜리 무기급 우라늄이다. 이 시설을 지금 영변에 한 군데 더 증설하고 있다, 사무총장 보고였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서 ‘구성’과 ‘농축우라늄’이 눈에 띤다.
그로시 총장 보고에선 영변과 강선, 풍계리만 거론됐다. 구성은 없었다.
구성은 과거부터 북한 핵 관련 활동이 있었던 곳으로 민간 싱크탱크와 언론 보도에서 거론된 바 있다. 다만 민간 영역의 ‘추정’을 정부 고위관계자가 공식석상에서 ‘확인’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고 지적할 수는 있다.
농축우라늄은 사정이 다르다.
이란의 우라늄농축도가 60%라는 것은 이란 측 발표 등에서 나온다. 반면 북한 농축우라늄 수준을 명확하게 수치로 언급하는 경우는 정 장관 발언 외에는 찾기 힘들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에서 진행중인 농축의 농도(%)를 파악하는 방법은 IAEA 사찰과 정보기관의 신호정보 수집 또는 정보원 활동이 있다.
IAEA 사찰단은 2009년 4월 이후 북한 핵 시설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IAEA와 민간 싱크탱크들은 고해상도 상업 위성 사진 분석으로 북핵 활동을 감시한다.
그런데 위성사진은 핵 시설 외관과 가동 여부만 확인할 수 있다.
우라늄 농축은 건물 안에 설치된 수백∼수천개의 원심분리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화학적·물리적 공정의 결과물이다. 위성으로는 농축도 파악이 불가능하다.
위성사진을 근거로 분석한 북핵 관련 보고서들이 북한의 우라늄 농축도를 모호하게 표현하는 이유다.
IAEA 사찰과 위성사진 분석으로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면, 정보기관이 실시하는 북한 내 교신 감청 등의 신호정보 수집과 정보원의 활동이 남는다. 어느쪽이든 기밀 정보 수집 활동이다.
신호정보 수집·분석 결과와 정보원의 첩보는 정보 커뮤니티에서 고도의 기밀 영역이다. 수집이 매우 어렵고, 수집 사실 또는 징후가 드러나면 상대가 곧바로 대응해서 ‘정보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정 장관의 발언 중에서 구성 못지 않게 농축우라늄 언급을 예민하게 받아들였을 가능성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위성으로 안 보이는 정보…美 신호정보와 기밀의 본질
대북 정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신호정보다. 북한 내 통신이나 전자파 등을 잡아내 정보를 생산하는 형태다. 공작원 침투가 불가능에 가까운 북한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북한에서 흘러나오는 무선교신과 전자파를 엿듣고, 분석하는 신호정보는 북한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게 해준다.
또한 미사일 발사 징후를 포착·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 다른 나라는 따라잡기 어려운, 미국의 독보적 능력이자 경쟁 우위다.
미 국가안보국(NSA)에서 근무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NSA 보고서에는 미국의 대북 신호정보 수집·분석·융합 능력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2006년 10월 23일 NSA 산하 북한 군사작전부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부서는 북한이 같은해 7월 인민군 동원령을 내린 것과 관련, 분석·보고팀을 구성해 수백 시간에 달하는 연구·분석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같은해 8월 북한 해군 통신을 감청, 보고서 2건을 작성한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NSA는 북한의 경계태세 강화를 미국 정보공동체에 최초로 알렸고, 북한 내 동원령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같은해 8월 6일 작성된 보고서에는 7월 이뤄진 북한의 대포동-2호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관련, “1991년, 1993년, 1998년, 2004년 미사일 활동 데이터를 반영한 신호정보 기반 미사일 주기 타임라인을 개발해 매일 업데이트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렇게 생성된 다양한 정보 중 일부를 선별해서 한국과 일정 조건 하에 공유한다.
한·미 연합작전 관련 업무에 관여했던 한 예비역은 “미국만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현역 시절 부대에 있으면 ‘북한이 00일대에서 미사일 시험 준비하니 미리 준비하라’는 명령이 내려올 때가 있었다. 미국이 우리와 관련 정보를 공유한 거다. 북한도 한·미가 감시하는 걸 아니까 보안에 신경쓸텐데, 미국은 그런데도 신호를 다 잡아내는 것 같았다. 그게 정보력의 차이다.”
정보공유가 일상적으로 이뤄지다보니 미국의 정보를 공짜처럼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정보를 수집·생산하는 정찰자산과 정보분석요원들은 미국인의 세금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미국의 정보는 생성되는 순간 유·무형의 값어치가 매겨진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정보의 유통과 공개 등을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에 맞춰서 제약을 둔다.
한국과 공유한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때, 미국 측이 거세게 반발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유출되면 끊긴다…반복된 갈등, 한·미 신뢰 흔들리나
한·미는 2000년대 이래 정보공유를 둘러싸고 수 차례 갈등을 빚었다.
2009년 2월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 조짐이 언론에 유출되자 미국측 고위 관계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한국군은 보안조사를 진행했으나, 정보공유 과정에서 한국군이 접근하지 못하는 미국측 정보가 급증했다.
2015년 8월 ‘작전계획 5015’ 일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을 때, 주한미군측은 유출 경위에 대한 공동조사를 요구하는 등 격렬하게 반발했다.
같은해 11월 북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실패에 대한 언론 보도는 이같은 반발을 격화시켰다. 미국 측이 한국에 공유한 위성영상정보가 거의 실시간으로 유출됐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건이 벌어지는 와중에 미국 정보에 대한 한국군의 접근이 상당수 차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관계에 갈등이 있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한·미는 정보공유와 유출 문제로 숱하게 충돌해왔다. 하지만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채 내부에서 수습이 이뤄졌다.
갈등이 수면 위로 곧바로 올라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공개되더라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하지만 정 장관의 구성 핵시설 발언과 대북 정보공유 제한은 갈등 해결 전 언론에 먼저 공개됐다. 매우 이례적이다.
이를 두고 한·미간 신뢰 및 갈등 조정 매커니즘의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정 장관 발언 직후 미국 측은 자신들의 정보가 발언의 근거가 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고 경고 메시지를 보냈으나, 정부 내에선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은 한국군과 정보를 공유할 때, 유통 범위 등에 조건을 붙인다. 정보를 공유받았으므로, 그에 딸린 조건을 준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한국 측이 해당 조건을 준수할 것인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지면, 미국은 정보 공유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북한 위협에 대한 한·미 공동 평가 등에도 영향을 끼친다. 신속한 수습과 복원이 필수다.
최근 한·미는 비무장지대(DMZ) 출입 승인 권한 문제 등의 현안에서 공개적으로 충돌해왔다.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2월 주한 미 공군 서해 훈련 문제로 안 장관에게 사과했다는 보도와 관련, 이를 공개 반박했다.
갈등이 공개적으로 일어났던 여파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안을 정치적으로 확대하는 대신 한·미 간 신뢰 회복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군 소식통은 “‘우리가 뭘 잘못했냐’고 할 순 있겠지만, 미국이 정보공유를 제대로 안하면 우리가 아쉬운 상황”이라며 “물밑에서라도 수습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