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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에 이상기후… “사과농사 접을 판”

경북 농가 삼중고에 시름

중동發 유류비 부담 30% 급증
올초엔 냉해로 꽃눈 동사 피해
때이른 더위에 병해충도 기승
“신품종 보급·경영 안정책 시급”

국내 최대 사과 주산지인 경북 북부 지역 농업 현장이 삼중고에 직면했다. 기후 위기로 인한 냉해와 신종 병해충 확산이 생산성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중동전쟁 리스크에 따른 농업용 유가 급등이 농가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찾은 경북 청송군 현서면의 한 사과 과수원은 예년 같으면 연분홍빛 꽃사과가 만개해 분주해야 할 시기지만 농민 김모(50대)씨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김씨는 말없이 냉해를 입어 검게 변한 사과나무 끝 나뭇가지만 유심히 들여다봤다. 올해 초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고지대 사과밭을 중심으로 꽃눈이 동사하는 피해가 광범위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16년째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는 김씨는 “농사꾼 인생에 올해만큼 앞날이 걱정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며 “겉으로는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속이 얼어붙어 수정이 제대로 안 된 꽃눈이 태반이다. 올해 착과량은 예년의 절반 수준도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경북 안동·청송 등 5개 시군에서만 3000㏊에 달하는 과수 피해 면적이 집계되는 등 기상이변은 이제 농가의 일상적인 위협이 됐다.

 

사과 농가를 더 옥죄는 것은 치솟는 경영 비용이다. 26일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사과 재배 면적은 꾸준히 감소세다. 농촌 고령화로 인한 폐원 영향도 크지만 치솟는 생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농가들이 속출하고 있어서다.

특히 올해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한 농업용 면세유 가격의 고공행진이 농민에겐 치명적이다. 과수원 방제기를 가동하거나 각종 기계 장비를 운용할 때 드는 유류비 부담은 전년 대비 30% 이상 급증했다. 여기에 필수 자재인 비료값과 농약값마저 동반 상승하면서 농민들은 “사과를 팔아도 손에 쥐는 것은 인건비조차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생산량은 줄어드는데 투입 비용은 늘어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병해충의 확산은 농민들의 잠을 설치게 한다. 기온이 상승하고 습도가 높아지는 아열대성 기후가 확산하면서 각종 신종 병해충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자체가 예찰 활동을 강화하고 있지만 변화무쌍한 기후 속에서 방제의 적기를 맞추기란 쉽지 않다.

이런 여파는 단순한 수확량 감소에 그치지 않는다. 제대로 수정되지 못한 꽃눈에서 맺힌 열매는 당도가 떨어지거나 경도가 약해지는 등 상품성이 현저히 낮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안동에서 사과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상만(61)씨는 “하루하루를 살얼음판 걷듯 지내고 있다”며 “산 넘어 산이라는 말처럼 기후 변화와 비용 상승, 병해충에 과수화상병까지 우려돼 농사를 지속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에 강한 신품종 보급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가 급등에 따른 에너지 비용 차액 보전 등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경영안정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 농업 관계자는 “농민들을 기후 위기와 고물가라는 벼랑 끝에 홀로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며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적 관심과 정책적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