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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우칼럼] 늑구의 귀환에 안도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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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포획과정 전 국민적 관심
부실 관리·동물복지 문제 뒷전
캐릭터·굿즈 마케팅에만 혈안
동물원 환경·존재이유 논의 필요

온 국민 속을 까맣게 태웠던 늑대 ‘늑구’가 집으로 돌아온 지 열흘이 됐다. 지난 17일 새벽, 9일간의 추적 끝에 기적적으로 포획되었고 대전 오월드로 무사히 귀환했다. 2018년 같은 시설에서 탈출했다가 결국 사살된 푸마 사례를 떠올리면, 이번 귀환은 큰 안도감을 준다.

포획 과정에서 커진 사회적 관심 탓에 늑구는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단순한 동정을 넘어 늑구를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로 그려냈다. 각종 밈과 AI 합성 이미지가 쏟아졌고, 코인까지 등장하면서 이 가여운 늑대는 집단적 서사의 중심에 올라섰다. 이제 관심은 ‘늑구를 보러 가자’로 바뀌고 있다. 언제라도 또 하나의 국민적 스타, ‘제2의 푸바오’가 탄생할 기세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늑구 얼굴을 본뜬 빵이 불티나게 팔리고, 대전시는 캐릭터 제작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늑구 굿즈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도 커지는 모양새다. 고양된 관심은 곧장 소비와 마케팅으로 이어졌다. 그사이, 오월드의 부실 관리와 동물 복지 문제는 뒤로 밀렸고, 소비와 이윤의 논리가 전면으로 부상했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늑구는 철조망 아래 흙을 파고 우리를 탈출해야 했을까. 시설이 싫어서였을까. 사실 이는 그저 본능적 행동이다. 늑대는 무리를 이루고 넓은 영역을 이동하며 살아가는 대표적인 사회적 동물이다. 이런 존재에게 동물원은 과연 의미일까. 결코 안전하고 편안한 곳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본능이 차단된 극한의 환경에 가깝다.

동물원은 인간의 관찰과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탄생했다. 보호는 명분일 뿐, 동물은 결국 ‘보여주기 위한 대상’일 뿐이다. 이들의 본성과 필요, 생명의 유지 여부는 부차적 문제다. 고무적인 변화도 눈에 띈다. 지난 20년간 서구를 중심으로 동물원을 보는 관점에 큰 변화가 생겼다. 동물을 ‘권리 주체’로 보는 인식이 커졌고, 동물원의 존재 이유와 형태를 묻고 토론하는 분위기도 마련됐다. 이제는 전시에서 복지로, 오락에서 보존으로 지향점이 바뀌었다.

우리는 어떤가. 여전히 전시를 최우선시하는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동물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좀처럼 꺼내지 못한다. 더 많이 보고, 더 가까이서 봐야 자연과 환경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늑구를 보러 가 동물원에 ‘돈쭐’을 내자, 그래서 사육환경을 개선시키자, 이런 기이한 주장으로 이어진다. 얼마나 인간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발상인가.

이제는 동물원의 존재 이유를 진중하게 물어야 할 때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인구가 천만 명을 훌쩍 넘겼다. 동물이 가족 구성원으로 인식될 만큼 동물권에 대한 인식도 대폭 높아졌다. ‘늑구 현상’을 만든 바로 그 문화적 배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왜 우리는 여전히 야생동물을 전시의 대상으로만 바라봐야 하는 걸까.

지난 22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존중받는 동물, 안전한 동물원’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27년 12월까지 동물원 대부분을 허가제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는 무르고 안일한 대책이다. 전국 121개 동물원 중 허가받은 10여 곳에 불과하다. 이곳들도 과연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나.

지금은 미온적 보완이 아닌 단호한 정책 집행의 시간이다. 공립과 사립을 가리지 말고 동물원에 대한 전수조사는 필수다. 수의사와 조련사가 부족한 곳, 탈출 방지 시설을 갖추지 않은 곳, 모두 영업정지를 포함한 강력한 규제로 대응해야 한다.

롯데월드는 흰고래 ‘벨라’를 방류하겠노라 일찍이 약속했다. 하지만 아직 지켜지지 않았다. 이를 비판하는 동물단체에 대한 소송전은 생명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동물을 존중한다는 말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게 느껴진다.

그러므로 늑구의 귀환에 마냥 안도할 수 없다. 되레 지금부터가 더 걱정이다. 늑구를 보고 싶고,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다는 마음,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선한 욕구가 결국 또 다른 고립과 억압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불안하다. 동물을 향한 관심이 소비로 소진되는 한, 진정한 존중은 공허한 이상에 그칠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