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거리마다 붉은 응원 물결이 이어지던 장면은 여전히 많은 이의 기억에 남아 있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경기를 지켜보며 환호를 나누던 그 시간 속에서 ‘국가대표’는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만큼 ‘축구 국가대표’라는 이름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국민적 자부심과 공적 책임을 함께 지닌 존재다.
하지만 최근 대한축구협회를 둘러싼 상황은 이러한 인식과 괴리가 크다. 국민적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돼야 할 조직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면서, 대표팀을 향한 시선도 이전과는 달라지고 있다.
유럽 원정 2연패라는 무기력한 성적표는 겉으로 드러난 결과일 뿐이다. 문제의 본질은 경기력이 아니라 축구협회의 운영 방식에 있다. 최근 신문선 명지대 교수가 자신의 유튜브에서 협회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처럼, 한국 축구는 특정 집단 중심의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는 2024년과 2025년 국정감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대한양궁협회가 94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제출하며 운영 구조를 설명한 것과 달리, 대한축구협회는 달랑 한 장짜리 핵심 내용을 요약한 짧은 자료를 제출하는 데 그쳤다.
특히 감독 계약 위약금 등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영업 비밀”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면서 공공성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에서도 감독 선임 과정과 의사결정 구조에서 부적정 사례가 확인됐다.
축구협회는 수익의 약 30%를 공적 재원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결정은 이에 걸맞지 않게 이뤄지는 구조다. 회장 중심으로 권한이 집중되면서 전력강화위원회 등 내부 견제 장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이임생 기술총괄이사와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이 자택 인근에서 비공식적으로 만난, 이른바 ‘야밤 빵집 면접’ 논란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한국 스포츠 행정이 지향해야 할 대표적 모범사례로 늘 언급되는 것이 양궁과 펜싱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안 한다”는 원칙 아래 양궁은 무결점에 가까운 선발 시스템을, 펜싱은 과학적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 서슬 퍼런 능력주의는 파벌과 인맥이 끼어들 틈을 원천 봉쇄했다. 사람이 아닌 ‘시스템의 공정성’이 종목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압도적인 성적으로 입증해 왔다.
양궁과 펜싱의 경우 시스템이 사람을 통제하는 구조인 반면, 축구는 사람이 시스템을 좌우하는 구조다. 국정감사장에 놓인 양궁협회의 94쪽과 축구협회의 한 장, 그 간극은 단순한 문서 분량의 차이가 아니라 행정의 투명성과 시스템의 무게가 만들어낸 격차다.
국가대표는 특정 조직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공공 자산이다. 그만큼 운영 과정 역시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적인 성적 반등이 아니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구조적 변화다.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 확보, 외부 견제 장치의 실질적 강화, 인사의 독립성 보장 등 기본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조직 운영에 대한 불신은 성적과 무관하게 종목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공정성이 흔들리는 순간, 팬과 국민의 지지는 빠르게 이탈한다. 성적을 잃은 축구협회가 신뢰 회복에 실패하면 이젠 협회의 존재 이유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