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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소싸움 대회에 ‘혈세’ 투입?…지자체·정치권 찬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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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76% “예산 투입 반대”
동물단체 “명백한 학대, 폐지법 통과해야”
지자체들 ‘전통 계승’ vs ‘시대 흐름’ 사이 고심
정치권, 소싸움 경기 폐지 입법 속도

수백 킬로그램(kg)의 거구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머리를 맞댄다. 뿔과 뿔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지고, 날카로운 뿔 끝에 긁힌 소의 이마에선 핏방울이 맺힌다. 관객들의 환호성이 커질수록 소의 눈망울은 충혈되어 간다. 누군가에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민속 경기’이지만, 누군가에겐 눈을 돌리게 만드는 ‘잔혹한 현장’이다. 수십 년간 ‘전통’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아온 ‘소싸움’이 지금, 거센 존폐의 기로에 섰다.

 

29일 경남 창원시 마금산온천지구에서 열리는 ‘전국민속 소 힘겨루기 대회’를 앞두고 지역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1999년부터 이어온 유서 깊은 행사지만, 올해 분위기는 여느 때와 다르다.

제미나이(AI) 생성 이미지.
제미나이(AI) 생성 이미지.

최근 동물자유연대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창원시민의 76%가 시 예산이 투입되는 소싸움 개최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특히 응답자의 71%는 관련 예산을 복지나 문화 등 타 분야로 전환해야 한다고 답했다. 소싸움을 ‘동물 학대’로 인식한다는 응답도 69%에 달했다. "우리 세금이 동물을 싸우게 하는 데 쓰이는 줄 몰랐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수치로 증명된 셈이다.

 

현재 창원시는 이번 5일간의 대회를 위해 약 1억7600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시 관계자는 “연간 2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지역 경제 활성화 카드”라고 설명하지만, ‘혈세 낭비’라는 비판을 피하기엔 역부족인 모양새다.

 

동물보호단체들의 공세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5개 단체는 지난 27일 성명을 통해 “소싸움은 대표적인 동물학대 산업이자 사행 산업”이라며 국회에 계류 중인 폐지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이들은 소싸움이 현행 동물보호법의 맹점을 파고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도박이나 오락을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는 엄연한 불법이지만,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민속경기’라는 예외 조항 덕분에 소싸움이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단체들은 “이름을 ‘소 힘겨루기’로 바꾼다 한들, 강제 훈련과 경기 중 발생하는 부상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지자체들의 대응도 갈리고 있다. 경남 함안군은 이미 2022년을 끝으로 대회를 중단했고, 일부 지자체는 눈치를 보며 예산 편성을 취소했다. 반면 경북 청도군처럼 대회를 재개하거나, 창원시처럼 기준을 강화해 강행하는 곳도 있다.

 

제미나이(AI) 생성 이미지.
제미나이(AI) 생성 이미지.

체육계를 넘어 정치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지역 축제에 대한 비판을 넘어, 이제는 제도를 통해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시도다.

 

지난해 11월 진보당 손솔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통 소싸움경기에 관한 법률 폐지안’은 소싸움을 둘러싼 해묵은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결정적 열쇠’로 평가받는다.

 

이 법안은 현행 동물보호법이 금지하는 ‘도박·오락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에서 소싸움만 예외적으로 허용해온 독소 조항을 삭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특히 소싸움을 민속 경기로 정의했던 법적 근거 자체를 폐지함으로써, 생명 존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법제도 안에 온전히 정립한다는 취지다. 법안에는 우권 발행과 관련된 사행산업법 및 세법 개정안까지 촘촘하게 포함돼 있어, 소싸움이 더 이상 ‘사행성 오락’으로 연명할 수 없도록 퇴로를 차단하는 체계적인 구조를 갖췄다.

 

전통문화의 보존인가, 동물복지의 실현인가. 창원시 관계자는 “소뿔 관리 기준을 강화하고 경기 시간을 제한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했다”고 밝혔지만, ‘생명 존중’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경제 효과’라는 현실적 논리가 맞물리며 소싸움을 둘러싼 파열음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수십 년간 경기장을 가득 채웠던 뜨거운 함성과 소들의 거친 숨소리는 이제 변화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 누군가에게는 향수 어린 민속 축제였던 소싸움이, 이제는 생명의 눈망울을 온전히 지켜줘야 한다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이라는 울타리가 생명 존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어떻게 품어 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