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는 갑자기 고장 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직전에는 반드시 징후가 남는다. 현장에서는 이 신호를 놓치는 순간 사고로 이어진다. 문제는 그 신호를 ‘제때 읽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이 이 지점을 겨냥한 기술을 내놨다.
KETI는 영국 워릭대학교 WMG(Warwick Manufacturing Group)와의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의 수명을 정밀하게 예측하고 이상 징후를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AI 원천기술을 확보했다고 28일 밝혔다.
국내 ESS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ESS 누적 설치 용량은 2023년 기준 약 10GWh 수준으로 확대됐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망 안정화 정책이 맞물리면서, 배터리 수명 관리와 안전성 확보는 산업 전반의 핵심 변수로 떠오른 상황이다.
이번 기술의 핵심은 ‘데이터를 중앙에 모으지 않는 방식’이다. KETI 분산에너지연구센터 연구팀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KETEP)이 지원하는 한-영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ESS 배터리의 잔여 수명과 이상 징후를 실시간으로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분산 연합학습(Decentralised Federated Learning)’을 적용했다. 각 장비에서 데이터를 직접 학습하고 결과만 공유하는 구조다. 쉽게 말해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지 않고도 AI 학습이 가능하도록 만든 방식이다.
이 구조는 운영 데이터가 외부로 이동하지 않아 보안성을 높이면서도, 통신 부담을 줄이고 학습 효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 중앙집중형 AI 구조의 한계를 넘어선 접근이라는 평가다.
기술의 또 다른 축은 ‘가볍게 만든 AI’다. 연구팀은 초경량 AI 모델을 적용해 기존 대비 수명 예측 오차를 40% 낮추고, 추론 속도는 60% 끌어올렸다. 고장 징후를 더 빠르게 포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능이 개선된 셈이다.
이 성과는 단순한 성능 개선에 그치지 않는다. 고성능 서버가 아닌 실제 현장에서 사용하는 배터리 관리시스템(BMS)에서도 별도 인프라 없이 바로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구 결과는 에너지·AI 분야 국제 학술지 ‘Energy and AI’에 게재되며 기술적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총괄책임자인 안정훈 KETI 박사는 “KETI가 보유한 ESS 열화 진단과 운영 기술력이 세계적 수준임을 확인한 성과”라며 “워릭대 명예부교수직을 수행하며 배터리 AI 분야 글로벌 연구개발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