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에서 춘향제 100주년을 앞두고 ‘춘향 영정’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일고 있다. 1931년 제작된 최초 춘향 영정의 공개와 사당 복원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와, 학술 검증과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행정 간 입장 차가 뚜렷해지면서 축제의 상징성과 정통성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최초춘향영정복위 시민연대’와 ‘남원역사바로세우기’는 29일 성명을 통해 “민족의 혼을 담은 춘향사당을 복원하고 최초 춘향 영정을 봉안한 뒤 100주년을 맞아야 한다”며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역사도, 미래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문제 삼는 핵심은 춘향사당이 세워졌던 1931년 제1회 춘향제를 기념해 제작된 최초 춘향 영정이 현재 향토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된 채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정은 경남 진주 출신 강주수 화백이 그린 작품으로, 한국전쟁 중에 일부가 훼손됐다.
이들은 “보존을 이유로 봉인된 문화유산이 과연 살아 있는 유산인가”라며 “공유되지 않는 유산은 결국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점에서 이는 보존이 아니라 단절”이라고 비판했다.
지역사회에서는 광한루원과 요천변 일대에서 ‘최초 춘향 영정 봉안’을 요구하는 캠페인이 이어지고 있다. “100년을 말하려면 1931년부터 꺼내라”는 구호를 통해 문화행정에 대한 집단적 문제 제기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논쟁은 단순한 공개 여부를 넘어 ‘시간’과 ‘의지’의 문제로도 번지고 있다. 시민단체는 “100주년이 4년도 채 남지 않았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조차 없다”며 “절차가 무기한 연기의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앞서 남원시와 남원문화원은 2023년 5월 제93회 춘향제에서 1억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김현철 작가가 그린 새 춘향 영정을 광한루원 춘향사당에 봉안했다. 1961년 기존 춘향 영정을 복제해 그린 김은호 작가가 친일 논란에 휩싸이면서 62년 만에 새로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새로 제작된 춘향 영정이 17세 춘향을 표현했다지만 실제로는 나이 든 여성처럼 보인다”며 “덕성과 기품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남원 안팎에서도 댕기머리를 한 10대 춘향이 아닌 쪽머리를 한 40~50대 여인으로 보인다고 비판하며 새 영정을 철회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왔다.
선호도 조사에서도 최초 영정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논쟁은 ‘미적 완성도’와 ‘상징성’ 문제로까지 확장됐다. 여기에 과거 봉안됐던 김은호 화백의 영정이 친일 논란으로 철거된 역사까지 겹치며, 남원시의 영정 정책은 반복적으로 갈등을 겪어온 셈이다.
반면, 남원시는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남원시 관계자는 “이미 학술적 검증과 공론화 과정 등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 새로운 영정 봉안을 마친 사안”이라며 “영정의 재봉안은 또 다른 논란을 낳을 수 있으나, 지속되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충분한 의견 수렴과 신중한 논의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 내부에서는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지양하고 생산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결국 이번 논쟁은 ‘역사적 정통성 회복’과 ‘객관적 검증 및 행정 절차’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양상이다. 지역사회에서는 “최초 영정 없는 100주년은 반쪽짜리”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반면, 행정은 신중론을 고수하고 있어, 향후 새로운 공론화 과정과 정책 결정이 지역 문화정책의 방향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춘향 영정은 3년 전 교체됐지만, 이에 관한 논란은 춘향제 100주년을 앞두고 남원이 명확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상징 자산의 부재가 축제의 국제적 위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축제가 어디서 시작됐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할 경우, 향후 남원 춘향제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나 브랜드 확장 과정에서 서사와 정통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