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게 미국 전체가 협상 테이블에서 굴욕을 당하고 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지난 27일(현지시간) 한 학교 강연에서 한 발언이다. 동맹국 정상이 공개석상에서 꺼내기에는 불편한 말이다. ‘협상의 기술’이라는 책을 낼 정도로 자신을 유능한 협상가로 여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는 더욱 그렇다. 메르츠 총리는 같은 자리에서 “미국은 협상에서 설득력 있는 전략이 없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란전쟁 개전 이후 두 달간 협상 국면을 지켜본 세계인들 상당수가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협상의 기술’에서 제시한 자신의 전략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무조건 항복’이라는 터무니없이 높은 요구로 협상의 기준점을 장악하고, “우리는 아쉬울 것이 없다”는 태도로 상대의 절박함을 자극했다.
인위적인 최후통첩 기한으로 상대의 판단 시간을 빼앗고, 합의가 현실화되면 갑자기 제안을 철회해 공황을 유발하기도 했다. 결과와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내가 이겼다”고 승리를 기정사실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란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호르무즈해협의 통제권을 쥔 채 협상 테이블에서 일관성과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상대가 심리적으로 무너져야만 성립하는 트럼프의 ‘협상의 기술’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의 기술’은 협상과 타협이 목적인 기술이 아니다. 구조적 우위가 보장된 환경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기 위한 전략이자, 지지자들에게 자신이 강한 지도자임을 보여주기 위한 거대한 연극 무대다. 이는 상대가 자신에게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 있는 절박한 상황일 때만 구도가 성립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전 세계 국가들의 관세협상 국면에서 성과를 올렸던 것은 그의 기술 때문이 아니었다. 미국이 세계 최대 군사대국이자 수입시장이라는 구조적 힘이 먼저 존재했고, 상대국들은 그 힘 앞에 꺾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100여년간 축적한 힘을 마치 자신의 협상기술인 양 무대 위에 올린 것이다. ‘협상의 기술’은 그 포장의 형식이었을 뿐이다.
문제는 이란이 처음부터 전혀 다른 게임판의 상대였다는 점이다. 수십년의 제재를 견디며 달러 의존에서 벗어난 이란에 미국 시장의 힘은 실질적 레버리지가 되지 않았고, 군사적 위협은 신정체제의 결속을 다지는 촉매로 작용했다.
핵을 포기한 전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최후를 지켜본 이란에 핵은 협상카드가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상대가 미국에게 바라는 것이 없는 구도에서 협상의 기술은 처음부터 작동할 수 없었다. 그렇게 포장은 벗겨지고 ‘협상의 기술’이 가지는 한계만 남았다.
현재 미국의 협상은 대화가 아닌 독백처럼 보인다. 상대가 받아주지 않는 ‘협상’은 혼잣말에 불과하다. 비극은 독백의 비용을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않은 전 세계인들이 분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메르츠 총리는 같은 강연에서 전 세계인을 대변해 호소하듯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문제는 항상 동일하다. 시작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어떻게 빠져나올지도 생각해야 한다”라고. 하지만 거대한 독백을 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그 외침은 공허하게만 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