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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고현정과 차기작 찍는 변영주…“극장은 다시 뜨거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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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잡고 영화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라는 뜻처럼 느껴졌다.”

 

30일 전북 전주 중부비전센터에서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올해의 프로그래머’ 기자회견에서 변영주(59) 감독은 전주영화제로부터 이 역할을 제안받았던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화차’(2012) 이후 10여 년 만의 장편 영화 복귀가 결정된 시점에 도착한 제안이었다.

 

변영주 감독이 30일 전북 전주 중부비전센터에서 열린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올해의 프로그래머’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연합뉴스
변영주 감독이 30일 전북 전주 중부비전센터에서 열린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올해의 프로그래머’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연합뉴스

전주영화제 ‘올해의 프로그래머’는 객원 프로그래머가 직접 영화를 선정하고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변 감독에게 이번 제안은 단순한 초청이 아니라 “지금 다시 영화를 돌아보라”는 요청처럼 다가왔다.

 

그가 고른 영화는 다섯 편이다. 그의 시작점이거나, 흔들리거나 길을 잃었을 때 새로운 빛이 되었던 영화 세 편,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청년의 바다’(1966), ‘내일을 위한 시간’(2014)이 포함됐다.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작품이다. 어린 시절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저런 걸 만드는 사람들 틈에 끼고 싶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영화로 향하는 출발점이 됐다.

 

‘청년의 바다’를 만든 일본 감독 오가와 신스케는 그에게 스승과 같은 인물이다. 1993년 처음 만난 오가와는 변 감독에게 다큐멘터리 작업 방식 자체를 남겼다. 변 감독은 “그가 쓰던 카메라와 녹음 장비를 물려받아 ‘낮은 목소리’ 첫 편을 찍었고, 이후 ‘청년의 바다’를 보고는 이 영화에 어울리는 내 작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낮은 목소리 2’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큐멘터리를 만들거나 만들려는 사람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시네마 베리테가 무엇인지 증명하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다르덴 형제는 그에게 “영화란 무엇인가를 계속 고민하게 하는 오늘의 선생님”이다. 변 감독은 “다르덴 형제와 나의 작법은 굉장히 다르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 세상을 이해하는 상태는 늘 내가 꿈꾸는 지점”이라고 했다. 

 

변영주 감독의 영화 ‘낮은 목소리 2’(1997)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변영주 감독의 영화 ‘낮은 목소리 2’(1997)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나머지 두 편은 자신이 연출한 ‘낮은 목소리 2’와 ‘화차’다. 다큐멘터리에서 극영화로, 독립영화에서 상업영화로 이어진 작업의 궤적을 보여주는 선택이다.

 

현재 그는 신작 장편 ‘당신의 과녁’을 준비하고 있다. 10월 프리프로덕션에 들어가며 배우 박정민, 고현정, 권해효, 박해준 출연이 확정됐다. ‘화차’ 이후 준비하던 영화가 6년 을 끌다가 무산되는 등 그 사이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따. 그러면서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연출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그는 드라마 연출작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을 떠올리며 “현장에서 너무 즐거웠고, 감독이 현장을 컨트롤한다는 감각을 다시 배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화차’ 개봉 때 ‘변영주의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14년 만에 여기에 답하게 된 셈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즐겁게 만든 영화를 관객도 즐겁게 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의 말은 자연스럽게 ‘지금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이어졌다. 그는 “차별과 혐오의 감정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우리(영화인)의 의무”라고 역설했다.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2012)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2012)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극장의 미래에 대한 시각도 분명했다. 그는 “영화가 더는 ‘핫한’ 매체가 아니라는 건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극장 경험은 다시 ‘핫’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둠 속에서 낯선 사람들과 같은 영화를 보고 각자 다른 생각을 안고 나오는 경험, 그것이 영화의 본질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는 극장 경험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정책, 카페·식당 등과 연결된 공간 경험 등 관객이 부담 없이 극장을 찾을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자고 제안했다. 북미·유럽에서 코로나19 이후 퇴조했던 관객 수가 회복됐다는 점을 언급하며 “우리라고 이유를 찾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변 감독과 전주와의 인연은 오래됐다. 전주영화제가 막 태동하던 시기, 영화제 준비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지역 영화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전주 출신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 선생과 함께였다. 전주의 한 아파트에 스태프들과 모여 살며 1년 가까이 촬영을 이어갔고, 송길한 선생과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렇게 만든 다큐멘터리 ‘지역 영화사-전주’는 2000년 제1회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됐다. 변 감독은 “전주에서의 시간이 정말 행복했다”며 “27년 뒤 이곳에서 다시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