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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확산 & 워라벨 다시금 '쉼표'를 찍다

AI전환 속 ‘주 4일제’ 근무 확산
英·美 기업서 생산성 향상 성과
인재 확보·이직 감소 조직 변화

불필요한 회의·보여주기 야근
‘가짜 노동’ 주4일제 도입 발목
고강도 업무 ‘압축 노동’ 우려도

주 4일제가 온다/ 조 오코너·재러드 린드존/ 구세희 옮김/ 지식의날개/ 1만8800원

 

최근 세계적으로 ‘주 4일 근무제’ 실험이 확산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급진적 구상으로 여겨졌던 이 제도는 이제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동일한 성과를 더 짧은 시간에 달성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데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세대가 노동시장의 중심으로 부상한 영향이다.

 

실제로 주 4일제를 도입한 기업과 조직들은 생산성과 조직문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며 기존 노동 개념을 재정의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이 생산성 저하와 번아웃, 저출산 문제 등과 맞물려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근로시간 단축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떠오른 상황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일부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호사 등 제한된 직군에서만 시범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정부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도입 가능성을 열어두는 한편 ‘주 4.5일제’와 같은 절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글로벌 컨설팅기관 최고경영자(CEO)이자 주 4일제 연구자인 조 오코너와 미래 노동을 취재해온 언론인 재러드 린드존이 공저한 ‘주 4일제가 온다’가 국내에 번역 출간돼 주목받고 있다. 책은 세계 각국 기업들의 실험 사례를 통해 주 4일제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실질적 성과를 낳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 오코너·재러드 린드존/ 구세희 옮김/ 지식의날개/ 1만8800원
조 오코너·재러드 린드존/ 구세희 옮김/ 지식의날개/ 1만8800원

저자들에 따르면 AI 도입과 주 4일제 확산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런던의 한 테크 기업이 미국 경영진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주 4일제를 운영하는 조직의 29%가 AI를 폭넓게 활용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주 5일제 기업은 8%에 그쳤다.

 

또한 AI를 사용하는 조직의 93%가 주 4일제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한 반면, AI 미도입 기업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시간 단축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과제가 AI 등장 이후 현실적인 목표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구체적인 사례도 눈에 띈다. 영국 환경컨설팅 기업 타일러 그레인지는 주 4일제 도입 이후 입사 문의가 5배 증가했고, 디지털 솔루션 도입을 통한 업무 효율화로 생산성을 30% 끌어올렸다.

 

뉴욕의 마케팅 기업 데일리는 직원들의 컨디션 개선과 창의성 향상으로 고객 재계약률과 신규 계약이 모두 두 배로 증가했다.

 

밴쿠버의 법무법인 와이로 역시 주 4일제 전환에 성공한 사례다. 대표는 수익이 10% 감소하더라도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결단을 내렸고, 수요일을 휴무로 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그 결과 이직률은 ‘0%’로 떨어졌고, 지원자가 급증하면서 우수 인재 확보에도 성공했다. 오히려 회사 규모는 확대돼 지점을 추가로 개설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국내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교육기업 휴넷은 2022년 7월부터 임금 삭감 없이 주 4일제를 도입해 ‘월화수목 근무, 금토일 휴식’ 체계를 정착시켰다.

 

회의 축소와 보고 간소화, 디지털 협업 강화 등 업무 전반을 재설계한 결과 직원 만족도와 생산성이 동시에 개선됐다는 평가다.

 

일부 스타트업과 정보기술(IT) 기업들도 유연 근무와 주 4일제를 결합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저자들은 디지털 기술과 자동화가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렸음에도 노동시간 구조는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장시간 노동이 두드러지는 국가로, 야근과 주말 근무가 일상화된 직장 문화가 여전히 강하다.

 

주 4일제를 가로막는 핵심 요인으로 ‘가짜 노동’이 지목된다.

 

불필요한 회의와 과도한 보고, 보여주기식 야근 등 실제 성과와 무관한 업무가 조직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주 4일제는 이러한 비효율을 제거하고 핵심 업무 중심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효과를 발휘한다.

 

다만 저자들은 주 4일제를 만능 해법으로 보지 않는다. 준비 없이 도입할 경우 업무 강도가 높아지는 ‘압축 노동’으로 변질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회의 축소, 의사결정 구조 개선, 명확한 성과 기준 설정 등 조직 전반의 혁신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더 오래 일하는 것이 미덕이던 시대가 저물고,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식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한국 사회 역시 이 변화의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