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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진의 선견지명] 세월교와 배고픈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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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에 세월교(洗越橋)라는 이름의 다리가 있다. 한자 그대로 보면 “씻으며 넘어가는 다리”인데 한자 뜻 그대로 물이 아래로 흐르도록 관을 두고 그 위에 얇게 길을 깔아 건너도록 한 생활밀착형 간편 다리이다. 평시에는 차도 사람도 무난히 지나다니지만, 비가 오면 물이 넘쳐 다리를 씻듯이 넘친다는 맥락으로 이해해 볼 만하지만 우리네 전통 정서에 쉽게 어울리지 않는 땅이름이다.

그래서일까 혹간 이 지명이 ‘사이여울다리’가 줄어서 ‘새월다리’가 되었다가 한자어화하면서 ‘세월교’가 되었다는 식의 그럴싸한 설명이 덧붙기도 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단어의 국적은 일본이다. 일본어 아라이고시바시(洗い越し橋)는 계곡에서 흘러내린 시냇물이 그 위를 넘쳐흘러 가도록 만든 길을 뜻하는 일본어인데 이 중 일본어 토씨(이い, 시し)를 빼고 한자어만 한국식 발음으로 읽은 말이 ‘세월교’이다.

이 세월교에 대응되는 순우리말 땅이름은 ‘배고픈다리’이다. 광주 북구 홍림동에 있는 홍림교는 일명 배고픈다리로 알려져 있다. 왜 이 다리에 ‘배고픈’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에 대해서는 구구한 이설이 많다. 무등산에 나무하러 갔던 사람들이 이 다리쯤까지 오면 배가 고파졌다느니 어느 할머니가 이 다리에 이르러 배가 고파 쓰러졌다느니 다리를 만들 때 모은 돈이 105푼(백오푼)이어서 ‘배고픈’이 되었다느니 세종 때 이방이라는 관리가 인근의 증심사를 증축하면서 개미에게 선행을 베풀었는데 세종의 꿈에 이방이 역적모의를 한다는 모함이 있어서 사약을 든 파발이 이 다리까지 왔는데 개미들이 말들을 더 이상 가지 못하게 며칠을 붙들어서 파발 병사들이 배고파 지칠 때쯤 조정에서 모함을 취소하는 파발이 오고서야 말들이 움직이게 되어 이방이 살 수 있게 되어서 ‘배고픈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까지….

하지만 배고픈다리는 광주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제주 올레길 3코스 표선면 천미천 하구에도 배고픈다리가 있고 용담동과 삼도동을 잇는 위치에 배고픈다리 터가 남겨져 있기도 하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다리에 기둥을 세우거나 정식 다리를 놓을 수 없을 때, 아래로 물이 지나가도록 일부 공간을 남기고 물길 위로 직접 길을 내어 땅에서 이어질 때 아래쪽으로 움푹 꺼지게 만들어져서 마치 다리가 배고픈 것 같은 모습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배고픈다리’야말로 어쩌면 우리네 신산한 삶이 함께해온,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실제 우리네 지명일 것이다.

김양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