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증시에 상장된 부동산 투자회사(REITs·리츠)가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하면서 유동성 위기 우려가 번지고 있다. 우량 부동산을 보유하고도 현금 흐름이 동결되는 리스크가 현실화하면서 해외 투자의 취약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 사태가 전체 리츠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당국은 투자 심리 위축이 시장에 번질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30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상장 리츠인 ‘제이알글로벌리츠’의 기업회생 신청이 시장에 미칠 파장을 분석하고 있다. 특히 이번 부실 사태가 금융권 전반의 자금 조달 리스크로 확산하는지를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함께 집중 모니터링 중이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자산의 100%를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리츠사로 2020년 국내 최초의 해외 부동산 공모 리츠로 상장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회사의 기초 자산인 벨기에 소재 파이낸스타워의 가치 하락과 복잡한 대출 구조다. 이 건물은 벨기에 정부가 전량 임차한 우량 자산이지만, 글로벌 고금리 장기화로 건물값이 떨어지면서 자산가치 대비 대출금 비율인 담보인정비율(LTV) 약정 한도를 초과했다. 이에 돈을 빌려준 현지 대주단이 임대 수익을 강제로 묶어두는 ‘캐시트랩’(자금동결) 권리를 행사했다. 건물에서 월세 수익이 발생하지만, 운영 자금이나 배당금으로 쓸 현금이 막혀버린 것이다.
결국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이달 만기가 돌아온 단기 사채 400억원을 상환하지 못해 신용등급이 채무불이행(D)으로 추락했고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 확충 시도마저 현지 대주단과의 감정평가 분쟁으로 무산되면서 시가총액 약 2300억원이 동결됐다. 회생 절차로 해외 대주단이 건물을 헐값에 매각한다면 개인 투자자의 피해가 현실화할 수 있다.
시장은 해외 자산 비중이 높은 다른 리츠들로 불똥이 튈지 우려하고 있다. 제이알글로벌리츠와 마찬가지로 유럽 투자 비중이 높은 KB스타리츠는 운용 자금의 77%가량을 벨기에 노스 갤럭시 타워에 투자하고 있고, 프랑스 자산을 보유한 마스턴프리미어리츠 등도 주가가 연초 대비 큰 폭으로 하락한 상태다.
이들 리츠를 편입한 상장지수펀드(ETF)는 리츠 주식의 거래 정지로 인해 매일 산출해야 하는 기초 자산의 정확한 가격을 계산하기 어려워져, ETF 자체의 적정가치 평가와 거래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환헤지 계약에 따라 리츠가 은행에 내야 할 정산금을 내지 못할 경우 리스크가 은행권으로 번질 위험도 2차 피해 경로로 꼽힌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가 당장 연쇄 부실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전지훈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제이알글로벌리츠는 대규모 자산이 특정 해외 부동산에 집중돼 있는 등 개별 회사의 특수성이 강하다”며 “각 리츠마다 보유 자산의 위치와 만기 구조가 달라 다른 리츠로 위기가 직접 전이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얼어붙은 투자 심리가 시장 전반의 자금줄을 마르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 연구원은 “과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처럼 투자 심리가 한순간에 꺾일 경우, 우량 리츠들마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파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당장의 시장 안정화 조치와 근본적인 제도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은미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투심이 과도하게 경색된 상황에서 정부가 앵커리츠(대형 기금 리츠)를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단기적인 시장 안정과 후속 대책을 마련할 시간을 벌어주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자산가치 하락 시 발동되는 자금동결 조항 등 구조적 리스크를 개인 투자자가 명확히 알 수 있도록 공시 체계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