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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책 읽고 손편지 나누며 ‘느리게 소통’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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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장’ 나선 소설가 김금희

두 달마다 읽을거리 보내주고
구속감 없도록 느슨하게 연결
동네서점 독자들이 편지 쓰면
라디오로 피드백 제공하기도
“사람은 대화를 할 때 ‘○○씨, ○○야’처럼 대화 상대방의 이름을 먼저 부르잖아요. 하지만 고래는 자신의 이름을 먼저 밝힌 뒤 이야기를 합니다.”

 

단상 위에 놓인 작은 책상에 앉은 기자이자 작가 남종영씨가 재미있는 이야기 한 자락을 들려주자, 객석에 자리한 이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동네서점들과 손을 잡고 북클럽 설립 운영에 나선 김금희 작가.
세계일보 자료사진
최근 동네서점들과 손을 잡고 북클럽 설립 운영에 나선 김금희 작가.
세계일보 자료사진

지난 24일 저녁, 서울 중구 순화동 알라딘빌딩 1층 강당에선 고래의 생태와 사회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담은 남 작가의 책 ‘다정한 거인’을 놓고 ‘페퍼로니북클럽’ 북토크가 열리고 있었다.

 

회원 50여명이 강당을 가득 메운 가운데 오후 7시부터 진행된 북토크는 작가와 진행자 간 대화(1부)에 이어 북클럽 회원들이 참여하는 질의응답(2부), 저자 사인회 및 사진 촬영 등의 순서로 이어졌다.

 

이날 다소 무겁거나 교훈적으로 흐를 수도 있는 북토크를 활기차고 즐겁게 이끈 이는 다름 아닌 소설가 김금희씨였다. 비록 엑셀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지만, 그는 신동엽문학상을 비롯해 젊은작가상, 현대문학상, 김승옥문학상 등을 다수 수상한 전도유망한 작가 아닌가. 2009년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한 그는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복자에게’, ‘크리스마스 타일’, ‘대온실 수리보고서’ 등을 발표했고,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등을 꾸준히 출간했다.

김 작가는 이날 남 작가에게 팬심 가득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수건을 비롯한 경품을 내걸고 회원들의 대답이나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다.

 

“작가로서 책을 내고 사람을 만나지만, 다른 사람들이 쓴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어요. 작가가 되기 전 6년간 출판사 직원으로 일했기에 책을 만들어보고 싶었죠. 게다가 팬데믹 시기 온라인으로 두 달에 한 번씩 독서모임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함께 책을 읽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지난해 어느 날, 그는 덜컥 출판사 ‘페퍼로니’의 사업자 등록을 했고 이어 연말에는 북클럽 회원 모집을 시작했다. 어떤 책을 읽을지, 회원들에게 무엇을 선물할지 등을 정하지도 않은 채.

 

다행히 반응은 뜨거웠다. 올 1월 중순까지 연회비 3만9000원을 내는 북클럽에 무려 1000명 가까운 사람이 참여했다. 곧 ‘환영 키트’ 제작에 착수했다. 키트에 북클럽 가이드와, 그의 엽편소설 ‘브로츠와프의 개’, 편집자 박지영씨의 에디터 일기, 책에 관한 안미옥 시인의 ‘북코그리피’ 등 다양한 읽을거리를 담았다.

김 작가의 북클럽에선 회원들과 함께 천천히 책을 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회원들에게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두 달 간격으로 회원들에게 읽을거리 키트를 보내주는데, 앞으로 소설가 백수린이 새롭게 연재하고 연말이 되면 배우 박정민씨도 엽편소설을 쓸 예정. 글들은 디자인도 모두 다른 편지처럼 만들어져 회원들에게 닿는다. “처음 시작할 때 이메일이나 웹진으로 해보라고 조언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건 제가 생각하는 방식의 소통과 멀었어요.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실물이 없잖아요. 전 실물이 왔다 갔다 하고, 사람들이 펼치고 만져보고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북클럽은 너무 강한 소속감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을 감안,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 홈페이지(곰앤페러로니)에는 북클럽이나 출판사 공지나 소식이 간략하게 실리고, 책 이야기를 하는 라디오가 올라오는 정도다.대신 그가 진행하는 저자와의 북토크를 하거나, 협업하는 동네 서점이 요청하면 저자를 연결시켜 준다.

 

특히 북클럽과 동네 서점 간 협업이 특징이다. 동네서점에 저자 북토크를 연결해주거나, 서점 독자들과 편지를 통해 소통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협업하는 동네 서점마다 나무로 된 우체통을 설치해 줬다. 독자들이 서점에서 편지를 쓰면, 서점에선 이들 편지를 수합해 북클럽에 보내고, 북클럽에선 편지를 홈페이지에 소개하거나 라디오를 통해 읽어주며 피드백을 주는 등 느릿하게 소통한다.

“독서와 손편지를 매개로 즉각적이 아닌 느리게 소통하는 방식을 저는 추구합니다. 옛날 우린 그런 속도로 살았잖아요. 그 속도를 다시 발견해 보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이미 온라인이나 AI에 약간 질렸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실감이라는 것은 자주 바뀌기 때문에 쉽게 질리기 어려워요. 매번 만나는 사람부터 느낌이 다르고, 같은 책이라도 함께 읽고 얘기하면 생각이 다 다르죠. 실감의 역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