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과 ‘추격자’의 지영민. 우리가 ‘사이코패스’ 하면 흔히 연상하는 캐릭터들이다. 극 중 두 인물은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가학적인 면모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반면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의 주인공 기가영은 전형적인 이미지와 궤를 달리한다. 감정은 결여됐지만, 어느 정도 사회 규율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유년 시절 할머니로부터 받은 ‘특훈’이 주효했던 셈이다. “남을 안아주면 너도 똑같이 안길 수 있다”는 약속이 사회적 제어 장치 역할을 했다. 현실에서는 장경철 같은 악인과 드라마 속 가영 같은 인물 중 어느 쪽이 더 많을까.
◆ ‘냉혹한 살인마’보다는 ‘공감 불능’에 가까운 의학적 실체
보건복지부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인격장애(ASPD)’와 혼용하지만 공식 진단명은 아니다. 다만 의학계에서는 이를 전 세계 정신의학계 진단체계인 ‘DSM-5’에 근거해 ‘반사회적 인격장애’ 범주 내에서 파악한다.
사이코패스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정신(Psyche)’과 ‘질병(Pathos)’의 결합으로, 본래 폭력성이 아닌 정서와 도덕적 병리를 뜻하는 의학 개념에서 출발했다.
DSM-5에 근거해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이는 이들을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분류하는 시각이 존재하지만, 모든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사이코패스는 아니라고 한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자가 주로 ‘분노 조절 실패’나 ‘감정 기복’ 등 키워드와 가깝다면, 사이코패스는 훨씬 더 냉담하고 피상적인 성향을 띤다고 알려졌다. 캐나다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가 제시한 ‘사이코패스 체크리스트(PCL-R)’에서도 공격성보다는 무책임성, 냉담함, 그리고 무엇보다 ‘공감 능력의 결여’를 핵심 지표로 꼽는다.
◆ 우리 곁에 스며든 ‘정서적 약탈자들’
전문가들은 모든 사이코패스가 공격적일 것이라는 편견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이코패스의 본질은 폭력성이 아닌 ‘죄책감 부족’과 ‘정서적 냉담함’이어서다.
많은 사이코패스는 범죄를 저지르기보다 규칙을 교묘히 지키며 사회 속에 녹아들어 살아간다. 이들은 충동적인 폭력 대신 타인을 도구처럼 활용하거나 관계를 계산적으로 조종하는 방식을 택한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조직이나 가정 내에서 가스라이팅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정서적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더 식별하기 어렵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이코패스를 구별할 현실적인 신호로 ‘공감 능력’과 ‘죄책감’을 꼽았다.
임 교수는 “최근에는 공격성을 숨긴 사이코패스가 많지만, 공감 능력을 유심히 살펴보면 구별이 가능하다”며 “반성문을 써보게 해도 진심으로 뉘우치는 기색이 전혀 없는 수준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잔혹한 범죄로 드러나는 경우보다 사회 규범을 활용해 타인을 교묘히 착취하는 사이코패스가 현실에 더 많다는 분석이다.
◆ 처벌을 넘어선 예방과 다각적 접근 필요
국가 차원의 조기 진단에 대해서는 신중하면서도 전향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임 교수는 “교육부, 법무부, 행안부 등 많은 정부 부처 간 협업이 가능해야 실현 가능한 부분” 이라며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아동 청소년 시기 사이코패스 검사와 관리가 가능하다면 제2, 제3의 조두순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류여해 수원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독일은 사이코패스를 범죄학적으로 보기보다는 병리학적·의학적 관점에서 본다”며 “전두엽 이상에서는 조기 발견으로 사이코패스 치료가 가능하다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또 “최근에는 기능적 사이코패스(Funktionale Psychopathen) 개념 관심이 급증해 범죄자가 아닌 사회적으로 성공한 전문직 중 사이코패스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럴 때는 병리적 검사보다는 성격 강점 분석의 일환으로 접근한다”며 “독일은 한국보다 더 다양한 관점에서 사이코패스를 연구하며 대응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실에서는 영화 속 등장인물인 장경철, 지영민보다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의 기가영 같은 인물의 사이코패스가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사이코패스의 본모습보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외연에 익숙해져 있을 때, 경각심이 낮아질 수 있다는 의견 등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