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석의 함성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모래판 위, 싸움소 한 마리가 위태롭게 서 있다. 깨진 뿔 사이로 핏방울이 맺히지만, 주인의 채찍은 멈추지 않는다. 얼핏 보면 학대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 법이 인정한 ‘체육’(스포츠)이다.
‘전통 소싸움 경기에 관한 법률’은 이 싸움을 민속 스포츠이자 사행 산업으로 규정한다. 이 법적 지위로 소싸움은 동물보호법이 금지한 ‘오락 목적의 상해’라는 굴레에서 자유롭다. 하지만 스포츠라면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선수(싸움소)의 안전’과 ‘은퇴 후의 삶’은 그 어디에도 없다. 생명의 존엄이 머물러야 할 그 자리엔, “살리는 것보다 죽이는 것이 이득”이라는 경제 논리뿐이다.
1일 손솔 진보당 의원실에서 청도공영공사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22~2025년) 청도공영공사에 등록이 말소된 싸움소 453두를 분석한 결과, 71%인 322두가 ‘도축’으로 생을 마감했다. 화려한 기술로 모래판을 호령하던 주역들이 은퇴 후 여생을 보낼 것이라는 기대는 스포츠의 낭만일 뿐이었다. 자연사로 생을 마감해 등록이 말소된 경우는 고작 15%에 불과했다.
특히 부상 선수를 대하는 태도는 참혹했다. 최근 4년간 경기 중 다친 소 36두 중 14두가 도축됐는데, 이 중 13두는 부상 후 채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도축장으로 향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 중 뿔이 탈락하거나 관절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어도,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치료가 아닌 ‘처분’이었다.
그렇다면 왜 우주(牛主)들은 가족 같다던 소를 이토록 쉽게 포기할까. 그 이면에는 지방자치단체 예산이 설계한 경제 구조가 박혀 있다. 통상 싸움소와 같은 대형 동물의 골절 수술과 재활에는 최소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체육계의 일반적인 부상 관리 시스템과 달리, 소싸움 경기장 내 응급처치 이후의 모든 치료비는 온전히 소 주인의 몫이다.
반면 ‘처분의 경제학’은 소유주에게 훨씬 매력적인 선택지를 제시한다. 주인이 치료를 포기하고 한 달 이내에 도축하면, 경기 시행자인 청도공영공사는 주인에게 ‘보상금’ 명목으로 100만원을 지급한다. 여기에 도축 후 받을 수 있는 수백만 원의 고깃값 수익까지 더해지면, 우주 입장에서는 막대한 치료비를 들여 소를 살리는 것보다 죽여서 ‘정산’하는 것이 훨씬 이득인 셈이다. 결국 지자체가 시민들의 세금으로 부상당한 선수의 ‘회복’이 아닌 ‘사망’을 장려하는 인센티브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 관리 실태는 참담한 수준이다. 손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등록이 말소된 소 중 무려 60마리는 ‘말소 사유’조차 파악되지 않은 채 명단에서 사라졌다. 선수가 은퇴했는지, 죽었는지, 혹은 누군가에게 팔려 갔는지조차 기록되지 않은 ‘관리 공백’ 상태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기록의 허점을 악용한 ‘유령 소 부정 출전’이다. 이미 도축된 소의 정보를 이용해 다른 소가 출전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는 베팅이 오가는 사행 산업에서 엔트리를 조작하는 명백한 ‘스포츠 부정행위’다. 이를 테면 이미 전성기가 지나 도축된 ‘스타급’ 싸움소의 전적을 신진 소에게 씌워 출전시킨다면, 이는 관중의 판단을 흐리는 대국민 사기극이자 승부 조작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서류와 현장의 괴리는 극명하다. 식탁 위 ‘고기’가 된 소들이 버젓이 생존 선수로 기록돼 대진표를 채우고 있다. 공영공사의 선수 관리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동물 학대로 엄격히 규정하고 있지만, ‘전통소싸움법’에 따른 소싸움은 예외로 인정받으며 사실상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행정의 감시 또한 유명무실하다. 손솔 의원은 최근 “인간의 오락을 위해 동물의 고통을 전제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 위반까지 방치하고 있다”면서 역대 최초로 ‘전통소싸움법 폐지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소싸움을 동물 학대의 예외로 규정하는 현행 동물보호법과 우권 발매 근거인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 등을 동시에 개정하여 법적 모순을 정면으로 해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 사감위의 소싸움 경기 단속은 지난 9년간 단 28회로, 전체 경기 일수의 고작 3% 수준에 불과했다. 점검 횟수는 경마(1106회)의 1.5% 수준에 그쳤지만, 단속을 나갈 때마다 위반 사례가 적발(총 62건)되는 등 현장은 사실상 ‘단속하면 무조건 걸리는’ 무법지대였다. 사감위는 소싸움을 철저히 외면하며 경기장 내 불법 도박과 주취 난동을 사실상 묵인해 왔다.
싸움소는 뿔이 뽑히고 다리가 부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주인의 명령에 따라 머리를 맞댄다. 그러나 이 ‘법정 스포츠’가 선수에게 남기는 것은 단 100만원의 사망 보상금이다. 세금으로 지급되는 이 돈은 ‘치료’가 아니라 ‘죽음’에 보상을 주는 구조다. 손 의원은 “지금 우리가 바꾸는 문화가 미래의 전통이 된다”며 “생명과 공존을 중심에 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제는 물어야 한다. 죽여야 돈을 주는 이 구조를 ‘민속체육’이라 부를 수 있는가. 10마리 중 7마리가 도축장으로 향하는 비즈니스를 과연 ‘스포츠’라 할 수 있는가. 전통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이 예산 집행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