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詩가 되다/방귀희/연인M&B/2만5000원
국내 장애인 문학의 지형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는 좀처럼 허용되지 않는다. 기반의 취약성과 더딘 비평 축적의 시간이 그만큼 길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방귀희 이사장이 펴낸 비평서 ‘내러티브가 詩가 되다’의 출간은 하나의 분기점으로 읽힌다. 창작 중심으로 흘러오던 장애인 문학에 비평이라는 ‘두 번째 언어’를 부여했다는 점에서다.
책은 저자의 고백으로부터 출발한다. “평론가로 정식 데뷔도 못 한 실력”이라는 겸양의 표현과 달리, 31년간 KBS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축적한 취재 경험과 글쓰기는 이미 단단한 토대를 이룬다. 3만여 명을 만나며 확인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곧 내러티브라는 그의 통찰은 책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으로 기능한다.
저자는 앤드루 델방코의 논의를 끌어와 문화예술 내러티브의 기능을 두 가지로 압축한다. 인간에게 소망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사회를 응집시키는 것이다. 그는 이 두 조건을 가장 선명하게 구현할 수 있는 영역으로 장애인예술을 지목한다. 장애를 삶의 조건으로 지닌 예술가들이 이미 강력한 서사를 내재하고 있으며, 그 서사가 개인의 극복담을 넘어 사회적 연대와 변화의 가능성으로 확장된다는 판단이다.
제목 ‘내러티브가 詩가 된다’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방귀희에게 내러티브는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드러내는 형식이며, 그 형식이 가장 응축된 상태로 구현된 것이 시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로써 장애인문학은 경험의 기록을 넘어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는 문학적 장르로 자리매김한다.
이 책의 특징은 ‘동행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고인이 된 장애문인 15명과 현재 활동 중인 25명, 총 40명의 삶과 작품을 다루며 저자는 평론가를 단순한 평가자가 아닌 ‘동행자’로 설정한다. 이는 기존 문학 비평이 취해온 거리두기 대신 삶과 작품을 함께 읽어내려는 태도다. 장애라는 조건이 어떻게 서사로 전환되고, 다시 문학적 형식으로 승화되는지를 구체적 사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 또한 적지 않다. 그가 이끌어온 ‘솟대문학 25년(1991~2015)’의 축적은 이러한 비평을 가능하게 한 토양으로 제시된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대목은 저자의 생애 자체가 하나의 내러티브라는 사실이다. 소아마비로 오른손 기능이 크게 제한된 조건 속에서 70년을 살아온 그는 차별과 배제를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그러나 그 경험을 고통의 서사에 머물게 하지 않고 문학을 통해 ‘삶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인식으로 전환해낸다. 그에게 문학은 이론이 아니라 체득된 앎이며, 삶의 방식에 가까운 실천이다.
이 같은 인식은 정책과 현장으로도 이어진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으로서 창작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장애예술인의 환경 개선에 힘써온 행보는 이론과 제도를 연결한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장애예술인지원법 제정에 기여한 점은 한국 장애인예술의 제도적 기반을 확장한 성과로 꼽힌다.
결국 ‘내러티브가 詩가 되다’는 한 개인의 문제의식과 경험이 응축된 결과물이자, 국내 장애인문학 비평의 출발점에 가까운 작업이다. 학문적 엄밀성보다 삶의 체온이 먼저 감지되는 문장들은, 장애인문학이 더 이상 주변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메시지로 이어진다. ‘최초’라는 수식은 이 책의 성취를 설명하는 동시에, 이제 막 시작된 논의의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