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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이 내 연봉 17배” 중소는 좌절… “하이닉스만큼” 대기업은 줄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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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성과급’ 풍랑, 대한민국 노동시장 강타
‘많이 받는다’ 수준 넘어 ‘임금의 계급화’ 현실화

삼성전자 노조, 21일부터 총파업 선언
현대차 등 핵심 기업 노조도 사측 압박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믿음요? 솔직히 박살 났죠. 옆집 사람이 받은 성과급의 세금이 제 연봉보다 많다는데 어느 누가 일할 맛이 나겠습니까.”

 

경기도 안산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10년째 근무 중인 이모(37)씨는 최근 점심시간이 고역이다. 식당 TV에서, 동료들의 스마트폰에서 연일 터져 나오는 SK하이닉스의 ‘성과급 잭팟’ 소식 때문이다. 김씨는 “하이닉스 성과급이 6억원을 넘는다는 뉴스를 보고 내 10년 치 경력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며 “이러니 다들 본업 대신 코인이나 주식에 목을 매는 것 아니겠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성과급 6억vs연봉 3600만…17배의 ‘초격차’

 

2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불러온 전례 없는 ‘억대 성과급’ 풍랑이 대한민국 노동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증권가 컨센서스에 따르면 올해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약 227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노사 합의안(영업이익 10% 배분)을 적용하면 내년 초 직원 1인당 평균 성과급은 세전 6억3000만원에 육박한다.

 

이는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4년 중소기업 평균 연봉(3684만원)의 17배에 달하는 수치다. 단순히 ‘많이 받는다’는 수준을 넘어, 보너스 하나가 중소기업 근로자의 십여년 소득에 맞먹는 ‘임금의 계급화’가 현실화된 셈이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는 “대한민국은 하이닉스 공화국과 그 외의 나라로 나뉘었다”는 자조 섞인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성과급 30% 내놔라”…대기업은 ‘골드러시’ 파업 중

 

좌절감에 빠진 중소기업과 달리, 다른 대기업 노조들은 이를 ‘처우 개선의 지렛대’로 삼고 있다. “하이닉스만큼 달라”는 요구가 들불처럼 번지며 줄파업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는 성과급 상한제 폐지와 영업이익 15% 배분을 요구하며 오는 21일부터 총파업을 선언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는 ‘영업이익의 20%’, 현대차와 LG유플러스 기업 노조들은 한술 더 떠 ‘영업이익의 30%’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대기업 직원 A(42)씨는 “의사나 전문직이 고소득을 올릴 땐 가만히 있다가, 기업이 낸 성과를 직원에게 돌려주겠다는데 왜 비난하는지 모르겠다”며 “열심히 일해 성과를 냈으면 그만큼 보상받는 것이 자본주의의 정의”라고 강조했다. 또다른 대기업 직원 김모(37)씨는 “이런 파격 보상이 있어야 인재들이 의대 대신 공대로 오지 않겠나. 기술 강국으로 가는 성장통으로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적 뇌관 된 임금 격차…‘사회 연대기금’ 고민할 때”

 

전문가들은 이러한 극단적 양극화가 공동체 붕괴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보상 체계의 공정성도 중요하지만, 격차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경우 사회적 통합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종선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최근 ‘쉬었음’ 청년이 75만 명에 달하는 근본 원인은 중소기업에 가느니 노는 게 낫다는 임금 격차 탓”이라며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이 교수는 “기업 실적이 최고조일 때 그 이익의 일부를 ‘사회 연대기금’으로 조성해 중소기업과의 격차를 완화하고, 청년 AI 교육 등 미래 인프라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불황이 닥쳤을 때 이 기금이 해당 산업의 안전망 역할을 할 수도 있다”며 노사정의 ‘사회적 대타협’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