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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외교의 거목’ 이홍구 전 국무총리 별세…향년 9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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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출신으로 총리·주미대사 역임하며 현대사 족적 남겨
고인이 지난 2019년 8월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동아시아평화회의 한국위원회 8·15 74주년 특별성명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모두발언 하는 모습. 뉴스1
고인이 지난 2019년 8월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동아시아평화회의 한국위원회 8·15 74주년 특별성명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모두발언 하는 모습. 뉴스1

 

학계와 정치계를 넘나들며 현대사의 주요 고비마다 길잡이 역할을 했던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5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세이다.

 

고인은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출신의 지성인으로 시작해 국무총리와 주미대사 등 공직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한국 정치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 학계에서 정계로, ‘통일·외교’의 기틀을 닦다

 

1934년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대를 거쳐 미국 예일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날카로운 논설과 논문을 통해 당대 정치 상황을 분석하는 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공직 생활은 1988년 노태우 정부 당시 국토통일원 장관으로 입각하며 본격화됐다. 이어 대통령 정치특별보좌관과 주영대사를 지내며 정무적 감각과 외교적 역량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 국무총리부터 주미대사까지…위기 극복의 해결사

 

고인의 정점은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다. 통일원 장관 겸 부총리를 거쳐 1994년 제28대 국무총리에 취임해 국정을 총괄했다. 총리 퇴임 후에는 신한국당 대표위원으로 정치권 전면에 나섰으며 제15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뀐 뒤에도 그의 역할은 계속됐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주미대사로 부임했다. 당시 국가적 재난이었던 외환위기를 조기 수습하기 위해 미국 현지에서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쳤던 일화는 유명하다.

 

◆ 사회 전반에 걸친 공헌과 마지막 길

 

공직 퇴임 후에도 고인은 서울국제포럼 이사장, 중앙일보 고문, 유민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사회 원로로서 묵직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체육계 발전을 위해 대한배구협회 고문으로 활동하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헌신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한옥씨와 아들 이현우씨(EIG 아시아 대표), 딸 이소영·이민영씨(동덕여대 교수)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5월 8일 오전 8시이며 발인은 오전 9시이다. 장지는 천안공원묘지로 정해졌다.

 

학계와 정계 전문가들은 고인을 ‘합리적 보수의 상징’이자 ‘초당적 외교 전문가’로 평가한다. 특히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고 국가의 실익을 우선시했던 그의 철학은 정치적 갈등이 심화된 현대 정치권에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정부는 고인의 공로를 기려 훈장 추서 등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