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파탄에 내몰린 부모가 어린 딸과 함께 자살을 시도한다. 부모는 숨지고 열한 살 소녀 ‘은하(박수아)’만 살아남는다. 보호자를 잃은 은하는 이모 ‘자영(김현주)’의 집으로 향하지만,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보호소로 향한다. 그곳에서 또래 친구 ‘보라(강혜원)’를 만나 우정을 쌓으며 두 아이는 서로의 기댈 곳이 되어간다. 둘은 ‘물고기 춤’이라는 자신들만의 춤을 만들어 추며 상처를 견딘다. 한편 자영은 언니 가족의 비극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잠식된다.
‘리틀 라이프’는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완성된 김용천 감독의 첫 장편 영화로, 올해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다. 어느덧 데뷔 30년을 맞은 김현주는 드라마 영역에선 로맨틱 코미디, 형사·법정물, SF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꾸준히 시청자 호응을 이끌었지만, 극장 영화 출연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런 그가 약 15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오며 이 작품을 택한 배경은 무엇일까. 1일 전주영화제 관객과의 대화(GV)를 앞둔 그를 만났다.
김현주는 이 작품이 “사건 중심의 이야기라기보다 인물의 감정 흐름을 따라 서서히 스며드는 영화”라고 말했다. 이러한 감정선을 표현하는 작업이 배우로서 자신의 강점이라 판단했다고 했다. 그는 “어른이라고 해서 완전한 존재는 아니고, 아이라고 해서 부족한 존재도 아니다”라며 “어른은 경험을 쌓는 대신 편견과 선입견을 함께 얻지만, 아이들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했다. 이어 “아이와 어른이 만나 서로를 채워주는 관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영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푸석함’을 꼽았다. 외모를 넘어 인물의 삶 전체를 규정하는 질감에 가까운 표현이다. 그는 “머릿결이 푸석해 보이도록 일부러 파마를 했고, 몸이 무거워 보이도록 체중을 늘렸다”며 “전반적으로 거칠고 푸석한 느낌을 구현하고자 했다”고 했다.
자영은 부모 없이 언니에게 의존해 성장했지만, 언니가 결혼해 가정을 꾸리며 ‘버려졌다’는 감정을 내면 깊이 품게 된 인물이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고 자영이란 인물이 짠하고 아프게 다가왔다”며 “사회와 동떨어져 주변부를 맴도는 인물처럼 느껴졌다. 특별히 부족한 점은 없지만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고 해석했다. 이어 “나 역시 소속감을 쉽게 느끼지 못하는 편이라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극 중 자영이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속내를 드러내는 장면에 대해 그는 “수십 년을 묵혀온 말을 꺼내는 순간을 연기하며 ‘이제야 살 수 있겠다’는 느낌을 현장에서 받았다”며 “막혀 있던 숨구멍이 트이는 듯했다”고 회상했다.
첫 독립영화 현장 경험에 대해서는 “스태프 수가 적다 보니 모두가 일당백으로 움직여야 하고, 그래서 더 열심히 뛰었다”며 “모든 스태프가 한 작품을 위해 완전히 몰입해 있는 강렬한 에너지를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집중도가 높으니 나 역시 흐트러질 수 없었다. 왜 그동안 (영화를) 더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데뷔 초 영화 현장에서 느꼈던 부담과 힘에 부쳤던 기억 때문에 한동안 스크린과 거리를 두기도 했다. ‘신석기 블루스’(2004), 국가인권위원회 옴니버스 프로젝트 ‘시선 너머’(2011) 이후 십여년 만에 영화 ‘정이’(2023)에 출연했지만, 이는 극장이 아닌 OTT 영화였다.그는 ‘리틀 라이프’로 관객과 만나는 긴장감에 대해 “혼이 절반쯤 나가 있는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스크린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둔 상태다. 그는 “여러 장르와 다양한 시스템을 경험하고 싶다”며 “기회가 있다면 앞으로 영화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1990년대 말 청춘스타로 출발한 그는 올해 데뷔 30년을 맞았다. 그는 “그 세월을 생각하면 내가 대단한 무언가가 되어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나는 여전히 똑같은 사람”이라며 “부끄럽다”고 했다. “제가 고참인 현장이 많지만, 선배로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은 내려놓았어요. 모든 작품은 새로운 무대이고 새로운 출발선이니까요.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관계를 어긋나게 하기도 하고요. 다만 ‘오래, 열심히 해왔구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
올해 그는 여러 작품으로 대중과 만날 예정이다. 현재는 tvN 드라마 ‘100일의 거짓말’ 촬영에 한창이다.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주연작 개봉도 앞두고 있다. ‘지옥’ 시리즈부터 이어온 연 감독과의 협업에 대해 그는 “같은 세대를 살아온 감수성이 비슷하다”며 “신뢰가 쌓였고, 궁금한 점이 생기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가 됐다”고 말했다. “연 감독님이 제안하고 작품이 좋다면, 다시 함께할 것 같다”고도 했다.
데뷔 30년 동안 수많은 역할을 선보여온 그에게 아직 남은 바람이 있을까. 해보고 싶은 역할을 묻자 그는 말했다. “진한 멜로, 너무 아프고 격한 멜로를 하고 싶어요.”(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