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금기로 여기던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균열이 시작된 국제 질서는, 패권국 미국의 이란 공격까지 더해지며 예외 없는 현실이 됐다. ‘무력에 의한 국경 변경은 용납할 수 없다’는 국제 사회 오래된 원칙은 무너졌고, 호르무즈 봉쇄로 이어진 중동 사태에선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자제 선마저 허물어졌다. 강대국들의 잇따른 무력 선택으로 그간 억눌려 있던 갈등은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전쟁이 갈등 해결을 위한 선택지 중 하나로 공공연히 거론된다. 여차하면 일전불사를 각오하겠다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파나마, 그린란드, 베네수엘라, 쿠바, 이란 등 곳곳에서 군사적 해법이 거론되고, 일부는 이미 현실이 됐다. 전쟁의 문턱은 눈에 띄게 낮아졌다. 돌이켜보면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였다. 공포와 이익이 뒤엉킨 인간 본성 속에서, 강자는 전쟁을 실행하고 약자는 그것을 견뎌내야 했다. 이 냉혹한 질서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양욱(51)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은 이런 흐름을 두고 “분쟁의 시대일수록 자강 능력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한민국이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문도 곁들였다. 그의 청춘은 군인의 길을 원했다. 하나회 숙군(肅軍)이 한창이던 무렵이었다. 군사정권 시절 적잖은 고초를 겪었던 부친의 반대가 완강했다. 세 번의 도전 끝에 1995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졸업 이후 민간군사기업 인텔엣지 대표이사,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위원, 합동참모본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하며 다시 군과 연결됐다. 지난달 말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만났다. 현 국제 정세를 꿰뚫는 통찰은 날카로웠다. 각종 밀리터리 서적과 장식품으로 채워진 개인 사무실은 더욱 남달랐다.
―2020년 이후 전 세계 곳곳에서 무력 충돌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패권 경쟁이 선을 넘어선 결과다. 과거에는 권위주의 대 민주주의라는 구도가 일정한 틀로 작동했지만, 이제 그 틀이 사실상 붕괴했다. 전환점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이었다고 본다. ‘국제 질서를 어겨도 큰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 연장선에서 미국의 베네수엘라 마두로 체포 시도나 이란 공격 같은 일들이 나타난 것이다.”
―향후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은 어떻게 전개될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원하는 성과는 대부분 얻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이후 상황까지 책임지려 하진 않을 것이다. 전면전도, 명확한 휴전도 아닌 ‘애매한 긴장 상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무너진 국제 질서를 복구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 판단에 크게 의존했다. 미국이 약해진 것 아닌가.
“군사력이 약해진 건 아니다. 다만 의사결정의 합리성과 체계, 백업 시스템이 과거와 달라졌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의 내부 통제, 주변국 유전 타격, 호르무즈해협 봉쇄 등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지만, 이에 대한 치밀한 대비 흔적은 찾기 어렵다. 트럼프식 리더십의 특징이다. 자신이 직접 쥐고 있는 사안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실제로 군사력 전개 일정 등을 보면, 정상적인 전쟁 수행이 어려운 상태였다.”
―미군이 강조해온 ‘전략적 유연성’과도 거리가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작전 자체가 예정보다 최소 몇 달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군이 이런 준비 상태로 움직일 리 없다. 외신 보도처럼 이스라엘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전쟁은 본질적으로 미국의 전쟁이라기보다, 이스라엘이 설계한 작전에 미국이 상당 부분 편승한 형태다. 그러고도 승리를 과신했다.”
―성급하게 작전을 펼치다 보니 초등학교 오폭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건까지 빚은 건가.
“미국의 직접 개입이 사실이라면, 이번 오폭은 중동에서 벌어진 미군 작전 중에서도 최악의 민간인 피해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 군사작전은 보통 표적을 장기간 분석한 뒤 실행한다. 하나의 표적을 검증하는 데 수일에서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과정이 충분했는지 의문이다. 표적 리스트 자체를 이스라엘이 만들었고, 미국은 이를 충분히 검증하지 못한 채 공격했을 가능성이 있다. 인공지능(AI) 역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으면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주도해온 미국이 오히려 그 기반을 흔들고 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2020년 11월 대선 승리 직후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했지만, 이듬해 4월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결정했다. 이 사건이 미국 주도 질서 약화의 분기점이었다. 갑작스러운 철수와 과정의 혼란이 동맹국들에 큰 충격을 줬다. 동시에 미국 내부에서는 ‘왜 우리만 질서를 지켜야 하냐’는 피로감도 커졌다. 이런 흐름은 쉽게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체제 아래서 미국의 도덕적 권위와 소프트 파워는 점점 소진되고 있다.”
―우린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나.
“미국과 이스라엘이 시작한 전쟁에 동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이 가진 위상을 생각한다면 호르무즈해협 봉쇄에는 목청을 높일 필요가 있다. 기뢰 제거를 위한 소해함 파견 정도의 패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관련한 무인 소해 장비도 해군에 있다고 들었다. 검증할 좋은 기회가 아닌가. 미국이냐 중국이냐 하는 그런 지정학적 사고의 틀을 뛰어넘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중추 국가로 가는 길이다.”
―드론전이 전쟁의 양상을 바꾸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전쟁이 펼쳐진다. 병력이 직접 싸우는 접촉면이 줄어들고, 대신 무인지대에서 드론이 교전의 중심이 된다. 이 전선을 돌파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상대의 무인 체계를 무력화하기 전까지 공방이 계속된다. 여기에 우주·사이버 영역까지 결합한 ‘다영역작전’(MDO·Multi-Domain Operations)이 더해지면서 전쟁은 훨씬 복잡해졌다.”
―AI와 로봇이 전쟁의 문턱을 낮춘다는 우려도 있다.
“이번 이란 사례가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AI 덕분에 표적 식별과 공격이 훨씬 빨라졌다. 과거라면 시간이 걸렸을 과정이 단축되면서 전쟁 개시 자체가 쉬워졌다. 다만 AI가 외교적 협상 시간까지 줄여주지는 않는 것 같다.”
―핵 억제 시대에서 AI 기반 억제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현대전에서는 AI 없이는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 교전 속도 자체가 인간의 인지 능력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작은 교전의 축적이 전투, 전선, 결국 전쟁의 승패로 이어진다.”
―AI와 드론이 통제 불가능한 확전을 초래할 가능성은.
“충분히 가능하다. 매우 위험한 시나리오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이를 통제하기 위한 고민을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상대하는 국가들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드론 전력 논쟁은 어떻게 보나.
“이제 드론은 병사의 소총만큼 중요한 장비다. 숫자 자체보다 중요한 건 운용 체계와 지원 구조다. 전담 조직은 필요하지만, 단순한 작전 사령부가 아니라 기능 중심 조직으로 설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다음 어떻게 싸울지 교리부터 만들어야 한다.”
―북한의 전력 고도화 수준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가 간 무기 순환이 활발해졌다. 북한은 러시아에 구형 무기를 제공하는 대신 기술을 얻어 재래식 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집속탄두를 장착한 미사일 등 탄두 다변화는 우려스러울 정도다. 전방 포병 전력 업그레이드도 마찬가지다.”
―한·미 정보 공유 갈등에 대한 평가는.
“사안 자체보다 대응 방식이 문제다. 최고위급까지 나서 공개적으로 대응한 것은 전략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았다. 미국 입장에서는 신뢰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다. 관계가 회복되더라도 정보 공유의 깊이는 이전과 달라질 수 있다.”
―K방산의 성장세는 어떻게 보나.
“지금 호황이 영원할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국제 정세가 불안하기 때문에 수요가 늘어난 측면이 있다. 한국 무기는 미국이 직접 공급하기 어려운 시장을 보완하는 역할에 가깝다. 결국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미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