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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고위험 산모 뺑뺑이’ 권역모자의료센터 20곳 중 12곳 산과전문의 4명 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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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전문의 실종, 소송리스크 부담 완화해야”

최근 충북 청주에서 29주차 고위험 임신부가 응급 분만할 병원을 찾지 못해 결국 태아가 숨지는 등 ‘분만 뺑뺑이(수용 불능)’ 문제가 반복되는 가운데. 24시간 분만∙고위험 신생아 진료를 위해 정부가 운영 중인 ‘모자의료센터’ 체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권역 내 모자의료센터를 총괄하는 권역모자의료센터 절반 이상이 정부의 산과 전문의 인력 기준 4명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계에서는 낮은 보상 체계와 의료사고 부담을 지적하며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권역모자의료센터 절반 이상이 정부의 산과 전문의 인력 기준 4명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합뉴스
권역모자의료센터 절반 이상이 정부의 산과 전문의 인력 기준 4명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합뉴스

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부터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 진료 유지를 위해 중증∙권역∙지역 모자의료센터 구조로 모자의료 전달체계를 개편해 시행 중이다. 고위험 산모의 지역 내 출산과 신생아 통합치료를 24시간 대응하고 권역 내 의료기관 간 연계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모자의료센터로 지정돼 지원받기 위해서는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권역 내 거점 역할을 수행하는 권역모자의료센터의 경우 복지부 지침에 따라 최소 4명의 산과 전문의를 둬야 한다. 정부는 권역모자의료센터 1곳당 매년 6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분만을 담당하는 산과 전문의 인력 공백 속에 해당 체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 권역모자의료센터 20곳 중 12곳은 정부의 기준인 산과 전문의 4명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각 권역모자의료센터를 통해 확인한 결과 이날 기준 고려대안산병원(3명), 제주대병원(3명), 충남대병원(3명), 전남대병원(3명), 인제대부산백병원(3명), 고려대안암병원(2명), 아주대병원(2명), 가천대길병원(2명), 단국대병원(2명), 인제대해운대백병원(2명), 충북대병원(1명), 양산부산대병원(1명) 등이 기준보다 적은 인원으로 응급 분만 현장을 지키고 있다. 서울성모병원(5명), 분당서울대병원(5명), 고려대구로병원(4명),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4명), 강원대병원(4명), 계명대동산병원(4명), 칠곡경북대병원(4명) 등은 산과 전문 인력이 4명 이상이다.

 

최근 29주차 30대 고위험 임신부는 청주에서 부산 동아대병원까지 3시간 30분 만에 옮겨지는 동안 병원 40여곳에 연락을 했다. 수술을 받은 임신부는 생명에 지장이 없었지만, 태아는 결국 숨졌다. 임신부를 수용하지 못한 충북대병원은 권역모자의료센터임에도 산과 전문의가 1명뿐으로, 당시에는 부재중이었다.

 

적은 인력으로 버티는 병원들은 이미 진료 및 분만 예약이 꽉 찬 상황이다. 더구나 현장을 지키던 기존 인력이 과로로 소진되면서 휴직∙연수 등 이탈 우려도 있다. 고대안산병원 관계자는 “현재 분만 담당의 산과 교수님이 3명이나, 8월부터는 연수를 떠나는 인력이 있다. 현재 출산 예정자의 예약은 받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고령 산모와 다태아 출산 등 고위험 분만은 늘고 있는 추세지만, 현장은 소수의 의료진이 휴일∙야간∙응급 대응을 감당해 한계에 봉착했다는 분석이다. 인력 기준을 충족한 곳 중에서도 계약직 ‘촉탁의’로 공백을 메우는 곳도 있다. 전북대병원은 산과 전문의가 3명이지만, 촉탁의로 2명을 두고 있다. 

 

이는 지역모자의료센터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역모자의료센터는 산과 전문의를 최소 2명 확보해야 하는데, 전국 지역모자의료센터 33곳 중 이보다 적은 인원으로 운영되는 곳이 적지 않다.

 

산과 의료진 이탈의 주요 원인으로는 낮은 수가와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 부담 등이 꼽힌다. 홍순철 고대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태어난 아기가 뇌성마비 장애를 입었다는 이유로 의사에게 12억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단이 나온 적 있다. 아기가 뇌성마비일 경우 80% 이상이 뱃속에서 불가항력적인 일로 발생한다”며 “현재처럼 사건이 터졌을 때 희생양을 찾는 구조 아래에서는 젊은 의사들이 유입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관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분만 관련 수가가 현저히 낮아 투입되는 비용의 50∼60%만 보존되는 상황”이라면서 “수가 인상과 함께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에 대한 인센티브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 권역모자의료센터 20곳 중 13곳은 정부의 기준인 산과 전문의 4명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티이미지뱅크
전국 권역모자의료센터 20곳 중 13곳은 정부의 기준인 산과 전문의 4명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분만 관련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가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이사장은 “일본∙대만처럼 불가항력적 사고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분담하는 시스템이 필수적”이라면서 “현재 분만 중 생기는 사고에 관해 최대 17억원까지 국가가 민사상 손해배상금을 보장하는 제도가 생겼으나, 형사 기소에 대한 위험 부담은 여전히 크다”고 밝혔다.

 

이어 이 이사장은 “인력 양성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국립중앙의료원 산하 중앙모자의료센터에서 현재 가용한 자원들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관리하는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에는 분만 관련 의료사고에 대한 민∙형사 책임을 완화하는 내용이 담겼으나, 의료계는 “중대한 과실 기준이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손해액 전액을 배상해야 공소 제기가 불가능한 구조에 대해서도 되려 민사소송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부는 인력 확보를 위해 고위험 의료에 대한 보상 체계를 개선하는 등 대책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산모와 신생아를 이송할 병원 현황을 실시간 파악하는 시스템도 마련해 다음 달부터 운영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