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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조금 많이 이상한 한국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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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편의점·길거리 택배 등 안전
사회 시스템·국민 양심은 ‘일등감’
정치는 ‘갈라치기’·혐오 등 조장
지선 눈앞… 심판의 표심 드러낼때

지난해 5월 부산의 한 편의점. 야간 알바생의 무단이탈로 편의점이 8시간 동안 졸지에 무인 점퍼가 되는 일이 발생했다. 텅 빈 계산대 앞에서 멀뚱거리다가 발걸음을 돌리는 손님이 속출하는 가운데, 한 여성 손님이 계산대로 이동해 민첩하게 포스기를 만지작거리더니 자신의 물건을 직접 계산했다. 본인 것만 하지 않았다. 다른 손님이 내민 물건도 계산해 줬다. 그 순간 계산대 앞이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지더니 손님들이 줄을 서서 해당 여성에게 물건을 계산 받기 시작했다.

알바생이 줄행랑친 편의점에서 자신의 시간을 쪼개 자발적으로 계산을 도운 손님과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선 사람들. 더 놀라운 건, 그날 편의점에서 없어진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연은 해외 커뮤니티에 알려지면서 한국은 신뢰도 높은 사회라는 댓글이 폭주했다.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서 저지선 역할을 해낸 건 한국인 특유의 양심이었다. 절망으로 끝날 수 있는 사건이, 오히려 사회의 기본 체력을 보여준 셈이다.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작가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작가

중동 전쟁 여파로 비닐 소재인 나프타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종량제 봉투 사재기가 얼마 전 벌어졌다. 일명 ‘쓰봉 대란’. 누군가는 이 사건을 두고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 평했고, 누군가는 취약한 에너지 구조가 낳은 문제라고 혀끝을 찼다. 그러나 정작 이 사연을 접한 해외의 반응은 달랐다. 라면도 아니고, 쌀도 아니고, 굳이 ‘쓰봉’을? 전쟁이 오더라도 결단코 무단 투기를 하지 않겠다는 한국인들의 준법정신이 이슈가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분리수거를 사수하겠다는 한국인들의 기이한 발상과 불굴의 의지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우리에겐 익숙해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택배 문화도 외국인들의 눈에는 신기하게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얼마 전, 택배 기사가 인도 위에 택배 상자를 쌓아두고 물건을 배달하는 장면이 해외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상자들이 길 위에 덩그러니 노출돼 있는데 누구 하나 가져가기는커녕, 관심도 두지 않는 모습에서 한국의 치안이 새삼 주목받았다. 해당 영상에 달린 한 한국인 네티즌의 댓글이 잊히지 않는다. “남의 택배 안 궁금함. 내 물건 언제 오나가 궁금하지.”

한국인의 국민성을 이야기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IMF 금 모으기나 카페 테이블에 핸드폰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도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조금 많이 이상한 한국인의 국민성은 그러나 정치로만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통합을 거스르는 정치인들의 갈라치기 때문이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있을 때마다 정치인들은 ‘시민 불편’을 강조하며 혐오를 조장하는 클리셰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치기했다. 표 하나 더 얻고자 남성과 여성을 갈라치기했으며. 분열의 언어로 세대 간 갈등을 부추겼다.

영호남을 가로지르는 지역감정 역시 정치의 산물이다. 1971년 대선 때부터 시작된 지역감정의 최초 설계자는 역대 대통령 3명의 구애를 받았던 킹메이커 엄창록이다. 엄창록에 관한 이야기는 변성현 감독의 영화 ‘킹메이커’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는데, 영화는 엄창록이 왜 ‘한국 네거티브 선거 기법의 원조’로 꼽히는가를 흥미롭게 묘사한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①상대 진영 선거운동원으로 가장해 비호감 사기 ②봉투에 푼돈을 넣어 상대방 후보 이름으로 돌리기 ③선물을 줬다가 뺏으며 역시 상대편 캠프 이름 대기. 그런 엄창록이 박정희 대통령 당선을 위해 내세웠던 게 ‘지역감정 설계’다. 이 좁은 땅덩어리가 반으로 쪼개져 적대적 관계가 된 것이 선거계략의 결과였다는 사실이 뼈아프다. 우린 어쩌면 모두, 정치의 피해자가 아닐까.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정책 논의는 실종되고 네거티브만 난무하면서 또다시 ‘비호감 선거’로 치닫는 분위기인데, 역시나 이번에도 국민을 갈라치는 혐오 공약들이 눈에 띈다. 갈라치기 선동에 놀아나 무방비로 이용당할 것인가, 잘 들여다보고 심판할 것인가. 조금 이상한 한국인의 진짜 본성을 깨울 때다. 가장 꺼내쓰기 좋은 적기이기도 하다.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