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박형 현장체험학습을 갔을 때 아이들 4명만 남아있는 방의 문을 닫고 나올 때 공포감이 저를 너무나도 무겁게 짓누릅니다. 그래서 저는 현장체험학습을 가지 못합니다. 교사가 해야 할 일을 했다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 최소한의 기반이 필요합니다.”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TP타워에서 열린 ‘안전한 현장체험학습을 위한 교육공동체 간담회’에 참석한 교원단체와 현장 교사들은 ‘예측 불가능한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이 온전히 교사 개인에게 전가되는 구조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날 자리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현장체험학습 축소 문제 관련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해 마련됐다.
◆ 교원단체 “체험학습 여부, 학교 재량… 가라고 강요 말라”
최기영 인천 논곡초 교사는 “교사 입장에서는 교육활동을 하는 중 예상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한다. 교실 안에서도 그러한데 학교 밖은 더 통제가 어렵다”며 “교사가 예측·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 유죄 판결이 잇따라 나오는 건 굉장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조재범 한국교총 교사권익위원장은 “28년 차 교사로서 30회 이상 체험학습을 다녀왔지만, 이제 후배들에게 가라고 말 못 한다”며 “면책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학교는 단순히 즐거운 추억을 쌓는 공간이 아니라 학습이 기반이 되는 곳”이라며 “시행 여부와 방식은 학교의 고유한 자율권이며 외부의 어떤 압력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는 3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안전 매뉴얼과 과도한 행정 업무, ‘아이 사진 수’까지 따지는 민원 등으로 인해 “교육적 내실보다는 행정적 방어에 치중하게 된다”는 탄식이 이어졌다.
강석조 초등교사노조 위원장은 “현장학습을 가기 전후 학부모들로부터 ‘왜 우리 아이 사진은 5장만 찍었냐’, ‘왜 우리 아이 표정이 좋지 않냐’ 등 민원이 엄청나게 온다”며 “교육 활동의 범위를 벗어난 과도한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할 제도적·법적 장치를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최봉구 울산 농서중 교사는 “각 교육청에서 배포하는 현장체험학습 교사 매뉴얼이 250~300페이지가 된다. 교사는 그걸 다 숙지하고, 숙박시설의 소방·위생 점검을 위해 각 기관에 7~8개 공문을 보내야 한다”며 “행정적 절차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학부모·학생들 “배움의 장 지켜 달라… 책임 의식도 높여야”
학부모와 학생들도 현장체험학습의 필요성에는 깊이 공감하며 배움의 기회가 사라지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다만 교사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적 안착’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학부모 대표 이윤지씨는 “학부모 입장에서 체험학습은 꼭 있으면 좋겠지만, 선생님이 안심하고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 마련되어야 아이들의 소중한 배움도 지켜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 대표들 사이에선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경준 서울 여의도고 학생회장은 “학생들 사이에서 체험학습을 가면 일탈 행동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라며 “학생회 차원에서 ‘해서는 안 될 일’을 분명히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지키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강호 서일중 학생회장도 “다양한 안전 문제를 야기하는 주체는 학생”이라며 “어리다는 이유로 규제하지 않는 것은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전 문제를 간과한 행동에 대해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각 부처 간 논의 후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최 장관은 “현장체험학습 준비는 가능한 범위에서 교육지원청이 하도록 해 선생님들의 업무 부담을 덜고, 현장의 여러 문제에 관해 안심하실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법을 보완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육부와 법무부가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 5월 중엔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