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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AI 연구 강국이지만 영향력은 한 단계 아래”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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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수 포스텍 무은재 석좌교수

WIPO 혁신지수 글로벌 4위지만
인용가능 문헌 h지수 16위 그쳐
지정학적 특성 탓 주류 진입 난항
더 의식적으로 교류·협력 나서길

연구자 해외이동, 유출 아닌 ‘진출’
정부 차원 연구소 유치 등 힘써야

“한국의 인공지능(AI) 연구는 양적으로 이미 세계 상위권입니다. 다만 (학술적) 임팩트 측면에선 프랑스·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 뒤처지는 게 현실이죠.”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국가AI연구거점(NAIRL) 사무실에서 만난 조민수 포스텍(포항공대) 무은재(無垠齋) 석좌교수(컴퓨터공학과)는 한국 AI 연구의 현주소를 이같이 짚었다. 한국은 지난해 9월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발표한 ‘글로벌 혁신지수(GII) 2025’에서 종합 4위에 올라 사상 처음으로 ‘4대 혁신 강국’에 진입했다. 인적자본·연구, 국내총생산(GDP) 대비 특허출원, 기업 연구역량 등 핵심 지표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결과다. 반면 학술 영향력을 재는 ‘인용 가능 문헌 h-지수’ 항목은 16위로 크게 밀려나 있다.

 

한국 AI 연구가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글로벌 혁신지수 4위의 양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학술 임팩트 순위에서 16위에 그치는 격차를 진단한 포스텍 조민수 교수의 분석을, 국가AI연구거점(NAIRL) 컨소시엄 구조와 함께 형상화한 인포그래픽. AI가 생성.
한국 AI 연구가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글로벌 혁신지수 4위의 양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학술 임팩트 순위에서 16위에 그치는 격차를 진단한 포스텍 조민수 교수의 분석을, 국가AI연구거점(NAIRL) 컨소시엄 구조와 함께 형상화한 인포그래픽. AI가 생성.

조 교수가 격차의 근원으로 꼽은 것은 메인스트림 진입 실패다. ‘임팩트 있는’ 연구는 결국 주변 연구자들이 인정해줘야 하는데, 그 흐름에 한국이 좀처럼 끼지 못한다는 진단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쓴 논문이면 일단 조회수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동아시아 변방에 위치한 한국의 지정학적 상황은 글로벌 주류 접근에 불리한 게 사실”이라며 “한국 연구자들이 더 의식적으로 국제 교류와 협력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피지컬 AI 분야 메인스트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학자다. 국제 학술대회 영역 의장(area chair)을 다수 역임했고, 구글 리서치 방문연구자로 활동했다. 내달 미국에서 열리는 컴퓨터비전 분야 최고 권위 학회 ‘CVPR 2026’에선 다섯 편의 논문이 채택됐다.

 


조 교수는 한국이 AI 메인스트림에 진입하기 위해 보다 개방적인 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해외로 발걸음을 옮기는 연구자들에 대해 인재 유출보다는 ‘진출’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조 교수도 서울대 박사 학위를 받은 뒤 4년간 프랑스 국립컴퓨터과학연구소(INRIA)와 파리고등사범학교(ENS)의 윌로(WILLOW) 연구팀에 몸담았다. 당시 팀을 이끌던 장 퐁스 교수는 컴퓨터비전 분야 세계적 석학으로, 유럽 최고 수준의 AI 연구로 주목받는 프레리(PRAIRIE) 연구소 수장이다. 퐁스 교수, ‘AI 대부’로 불리는 얀 르쿤 미국 뉴욕대 교수 등 책에서만 보던 학자들이 옆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던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조 교수도 시야를 한층 넓힐 수 있었다.

 

조 교수는 “한국에 좋은 일자리와 기회가 있으면 돌아오기 마련이다. 저도 그렇게 돌아왔다”며 “해외에 나가 있는 한국 연구자들 대다수가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민수 포스텍(포항공대) 무은재(無垠齋) 석좌교수(컴퓨터공학과)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국가AI연구거점(NAIRL) 사무실에서 한국 AI 연구의 현주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조민수 포스텍(포항공대) 무은재(無垠齋) 석좌교수(컴퓨터공학과)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국가AI연구거점(NAIRL) 사무실에서 한국 AI 연구의 현주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조 교수가 속한 거점에선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 연구자가 글로벌 무대에서 더 빛날 수 있도록 지원 중이다. 국가AI연구거점은 2024년 7월 출범한 국내 최대 산·학·연·관 AI 연구 컨소시엄으로, 연세대·고려대·포항공대·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연구팀 등 4개 대학교수 45명과 석·박사 200여명이 ‘원팀’으로 참여한다. 분야별로 흩어져 있던 컴퓨터비전·기계학습·자연어처리 연구자들이 거점 한 지붕 아래 모여 공동 연구를 펴고, 해외 석학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그 결과 출범 1년여 만에 세계 최대 AI 학회 뉴립스(NeurIPS)에서 39편의 논문이 채택되는 성과를 냈다.

 

거점은 7월 서울에서 세계 3대 학회로 꼽히는 국제머신러닝학회(ICML)가 열리는 것에 발맞춰 ‘글로벌 AI 프론티어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퐁스 교수를 비롯한 전 세계 석학들을 연사로 초대해 한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학계가 소통하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한국 AI가 주류로 향하는 길을 거점이 닦고 있는 셈이다.

 

조 교수는 “메인스트림 진입은 결국 국내 학계가 풀어야 할 숙제”라면서도 “정부 차원에서도 해외 연구소 유치 등에 힘써준다면 한국의 연구 리더십을 세우는 데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