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1200만 관중 시대. 사직과 잠실의 밤은 축제의 장이 됐다. 프로축구 K리그와 농구, 배구 역시 거대 팬덤을 기반으로 한 산업으로 재편됐다. 스포츠는 더 이상 경기 결과를 소비하는 영역을 넘어 중계권, 스폰서십, 굿즈 시장이 결합된 ‘복합 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스포츠산업이 커질수록 선수들의 생활 여건은 오히려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 경기장을 떠난 선수들은 곧바로 은퇴 이후 삶으로 들어간다. 20대 후반이면 또래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시기지만, 선수들은 이 시기에 현역 생활을 마치는 경우가 많다.
11일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KSPO)의 ‘은퇴 선수 진로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은퇴 선수의 평균 은퇴 연령은 23.6세다. 종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구기 종목 선수도 대체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커리어가 종료된다. 구기 종목 은퇴 선수 10명 중 4명(45.6%)은 부상이나 경쟁 탈락 등으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은퇴하는 비자발적 은퇴를 경험했다. 선수 경력은 평균 10년 안팎에 그친다.
문제는 고소득이 발생하는 시기가 이 짧은 기간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 리그 기준으로 억대 연봉은 일부 상위 선수에게 집중돼 있다. 연봉 5000만원 미만을 받는 선수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등 소득 격차도 큰 편이다. 결국 선수 개인의 소득 구조는 짧은 기간 수입이 집중된 뒤 급격히 줄어드는 형태를 보인다.
이 같은 구조는 은퇴 이후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정감사 등을 통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은퇴 선수 중 절반 이상(54.4%)이 무직 상태를 경험한다. 취업에 성공한 경우에도 10명 중 4명(43.9%)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재취업까지는 평균 11개월 정도가 걸리며, 이 기간 동안 상당수는 임시직이나 단기 일자리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수 시절 경험을 살리면 된다”는 인식과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실제로 은퇴 선수의 체육 관련 직종 취업 비율은 20~30%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도자나 코치 등 내부 직군은 이미 경쟁이 치열하다. 상당수는 일반 노동시장으로 이동하지만 선수 경력은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다.
실제 은퇴 선수들의 삶도 이러한 구조와 맞닿아 있다. 일부 선수들은 생계를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유튜브 콘텐츠나 언론보도에서도 편의점·택배·배달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은퇴 선수들의 사례가 반복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국회도 이 문제를 개인의 실패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보고 있다. 국회 문체위는 이를 ‘생애주기 절벽’으로 규정하고 제도 개선을 논의 중이다. 임오경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체육인 복지법 개정안이 핵심 대안으로 거론된다. 개정안은 체육인 공제사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전담 조직 설치, 책임준비금 적립 의무화 등을 담고 있다. 특히 연간 수백억원 규모로 운용되는 체육진흥기금의 일부를 공제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현역 선수 시절부터 은퇴 이후를 대비하는 재정 구조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정부도 다양한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진로 교육, 취업 역량 강화, 인턴십 연계 등을 통해 전환 지원 체계를 운영 중이다. 다만 이러한 정책이 개인 역량 강화에 집중돼 있어 노동시장 구조 자체를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프로스포츠는 철저한 경쟁 기반 산업이다. 경기장은 성과로 움직이고 선수는 기록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경기장 밖으로 시선을 옮기면 상황은 달라진다. 대중의 기억에는 극소수 스타만 남지만 산업 안에는 훨씬 더 많은 무명 선수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조용히 은퇴한 뒤 노동시장으로 이동한다.
산업이 성장할수록 상위 1%의 성과는 더 부각되지만, 평균적인 선수들의 생애는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 산업 성장과 선수 개인의 생애 안정이 엇갈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와 정부가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책의 중심은 여전히 사후 지원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도 있다.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스포츠는 기록으로 평가되는 영역이다. 그러나 경기 기록 어디에도 은퇴 이후의 시간은 남아 있지 않다. 1200만 관중 시대를 맞은 프로스포츠 산업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선수들의 생애 구조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