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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붉은광장의 북한군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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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7월14일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은 흔히 ‘바스티유 데이’로 불린다. 1789년 7월14일 파리 시민들이 정치범 수용소로 알려진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며 혁명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해마다 바스티유 데이를 맞아 프랑스 정부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거행한다. 이날 프랑스 대통령 옆 VIP석에는 특별히 초청을 받은 외국 정상 한 명이 주빈(主賓) 자격으로 앉아 행사를 참관한다. 그 나라 군대도 프랑스군과 나란히 시가 행진에 참여하는 것이 오랜 관행이다. 지난 2025년의 경우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바스티유 데이 주빈이 되는 영예를 누렸다. 인도네시아는 프랑스산 라팔 전투기 도입을 결정한 이른바 ‘라팔 클럽’ 국가들 중 하나다.

 

지난 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81주년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 참여한 북한군 부대가 시가 행진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81주년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 참여한 북한군 부대가 시가 행진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우리나라는 매년 10월1일 ‘국군의날’이면 육·해·공군 각급 부대 장병들과 첨단 무기가 총출동하는 시가 행진을 하곤 했다. 해마다 하는 연례 행사는 아니고 띄엄띄엄 해왔는데, 윤석열정부 시절인 2023년과 2024년 이례적으로 잇달아 실시됐다. 눈길을 끈 것은 한국의 유일한 동맹인 미국 군대, 곧 주한미군 장병들도 시가 행진에 동참했다는 점이다. 한·미 동맹 성립 70주년을 기념해 2023년 국군의날 시가 행진에 처음 참여한 미군이 이듬해인 2024년에도 함께한 것이다. 이를 두고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밀어붙인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국군의날 시가 행진 한번에 100억원 가까운 예산이 든다는 점을 들어 ‘혈세 낭비’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5월8일 나치 독일이 미국, 영국, 소련(현 러시아) 등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했다. 빌헬름 카이텔 독일 육군 원수의 항복 문서 조인은 그날 밤늦게 베를린에서 이뤄졌다. 미국 및 서유럽 국가들 시간으로는 분명히 5월8일이었으나, 시차 때문에 소련은 하루 뒤인 5월9일을 전승절로 기리게 됐다. 이후 해마다 5월9일이면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소련 또는 러시아의 2차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절 열병식이 거행된다. 지난 2025년 80주년 전승절 행사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한 러시아 주요 우방국 정상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아주 성대하게 치러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대신해 주(駐)모스크바 북한 대사와 북한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등도 행사장을 지켰다.

 

지난 9일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81주년 전승절 기념 열병식 도중 차량에 탑승한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러시아 국방부 장관이 북한군 병사들을 사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9일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81주년 전승절 기념 열병식 도중 차량에 탑승한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러시아 국방부 장관이 북한군 병사들을 사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9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81주년 전승절 열병식이 열렸다. 러시아의 여러 우방국들 가운데 유일하게 북한군 부대가 열병식에 참여해 러시아의 ‘혈맹’으로서 지위를 과시했다. 이와 관련해 외신들은 “과거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러시아군을 도와 우크라이나군에 맞서 싸운 북한군도 행진했다”고 소개했다. 우크라이나와의 접경지인 쿠르스크는 지난 2024년 8월 우크라이나군의 기습 공격을 받고 점령을 당했다. 이에 북한은 러시아와 사실상 군사 동맹을 맺고 대규모 군대를 파병해 러시아의 쿠르스크 탈환을 지원했는데, 그 과정에서 북한군 수천명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러의 군사적 밀착이 대체 어디까지 이어질지 우려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