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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보러 왔는데 월세뿐”…서울 아파트 전·월세 매물 30.1% 줄었다 [숫자 뒤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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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보다 전·월세 매물 1만3000건 줄어…서울 전셋값 0.23%↑
올해 입주 예정 2만7158가구…내년엔 1만7197가구까지 감소
다주택자 매도·인허가 급감 겹치며 세입자 반전세 압박 커졌다

“전세 보러 왔는데 월세뿐이네요.”

 

전세 물건 감소와 반전세 확산이 동시에 이어지며 체감 주거비 압박도 커지는 분위기다. 뉴스1
전세 물건 감소와 반전세 확산이 동시에 이어지며 체감 주거비 압박도 커지는 분위기다. 뉴스1

출근 전 휴대전화로 관심 단지 매물을 살펴보던 직장인은 화면을 몇 번이나 새로고침했다. 며칠 전까지 보이던 전세 매물은 자취를 감췄고, 남은 건 보증금을 낮추는 대신 매달 월세를 내야 하는 ‘반전세’뿐이었다.

 

실제 세입자들이 느끼는 답답함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12일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월세 매물은 3만1095건(7일 기준)이다. 연초와 비교하면 30.1% 줄었다. 시장에서 세입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자체가 빠르게 좁아진 셈이다.

 

가격도 바로 움직였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5월 첫째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23% 올랐다. 2019년 12월 넷째주 이후 6년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주간 상승률이다.

 

◆팔린 집은 늘었는데, 전세로 돌아오는 집은 줄었다

 

최근 서울 주택시장을 흔든 변수는 다주택자의 매도 움직임이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를 앞두고 보유 주택을 정리하려는 매물이 시장에 나왔고, 일부 급매는 빠르게 소화됐다.

 

지난 7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6만9554건으로, 7만건 아래로 내려갔다.

 

겉으로 보면 매물이 팔린 것이지만, 임대차시장에서는 다른 문제가 생긴다. 기존에 전세로 돌던 집이 실거주 매수자에게 넘어가면 그 집은 다시 전세시장으로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서울 전세시장은 공공임대보다 민간 임대 물량에 크게 기대는 구조다. 집주인이 팔고 나가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단순히 집주인만 바뀌는 게 아니다. 전세로 들어갈 수 있는 문 하나가 닫히는 일이 된다.

 

◆새 아파트도 줄어든다…전세시장 ‘버팀목’ 약해져

 

앞으로 들어올 새집도 넉넉하지 않다. 한국부동산원과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공동주택 입주 예정 물량은 2만7158가구다. 지난해보다 26.9% 줄어든 수치다. 내년에는 1만7197가구까지 감소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입주 물량은 전세시장에 중요한 완충 장치다. 새 아파트 입주가 늘면 기존 집에서 새집으로 옮기는 수요가 생기고, 이 과정에서 전세 매물도 일부 풀린다. 반대로 입주가 줄면 이런 순환이 약해진다.

 

서울에서 새 아파트가 귀해질수록 세입자는 구축 단지로 밀리고, 구축 단지에서도 전세 경쟁이 붙는다. 결국 신축 공급 감소가 주변 단지 전셋값까지 자극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더 큰 문제는 공급의 앞단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의 2026년 3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 주택 인허가 물량은 5632가구다. 전년 동기보다 62.4% 줄었다.

 

인허가는 당장 입주 물량은 아니지만, 몇 년 뒤 공급을 가늠하는 선행지표다. 지금 인허가가 줄면 3~5년 뒤 새집 부족으로 돌아올 수 있다. 올해의 전세난이 일시적 불편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전셋값보다 무서운 건 매달 빠지는 ‘월세’

 

세입자들이 더 크게 느끼는 변화는 전세의 월세화다. 전세 매물이 귀해질수록 집주인은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돌리는 반전세를 선호한다. 금리 부담과 세금 부담을 월세로 메우려는 움직임도 커진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계산이 복잡해진다. 보증금 1억원을 낮추고 월세 50만~60만원을 더 내는 조건은 처음엔 부담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1년이면 600만~720만원이 매달 생활비에서 빠져나간다.

 

전세 대출 이자, 관리비, 오른 물가까지 겹치면 체감 주거비는 훨씬 커진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매달 고정비만 늘어나는 구조다.

 

다주택자 매도와 입주 물량 감소가 맞물리면서 전세 매물은 줄고, 월세·반전세 비중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다주택자 매도와 입주 물량 감소가 맞물리면서 전세 매물은 줄고, 월세·반전세 비중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를 보러 온 손님에게 처음부터 반전세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예전에는 전세와 월세 중에서 조건을 비교했다면, 지금은 아예 전세 매물이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이번 임대차 불안을 단순한 가격 상승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다주택자 매도와 입주 물량 감소, 인허가 급감이 동시에 겹치면서 전세 공급 자체가 빠르게 줄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집값 부담 때문에 매매 대신 전세시장에 머무는 수요는 여전히 많다”며 “전세 물량까지 줄어들면 결국 세입자들은 월세나 반전세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