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가 21일로 예고된 반도체 총파업을 앞두고 이틀 간 진행된 정부 중재에도 결국 의견을 좁히지 못했다. 파업 전 노사가 대화를 나눌 마지막 기회가 사라지면서 최대 40조원대의 손실이 예상되는 총파업이 현실화됐다.
중앙노동위원회는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삼성전자 노사의 2026년 임금협약 체결을 위한 2차 사후조정 회의 결과 결렬됐다고 밝혔다.
중노위는 이날 오전 3시쯤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삼성전자 노사의 사후조정 신청을 받아들여 11일 시작한 사후조정을 차수 변경을 포함 13일 오전 2시 50분까지 조정을 진행했다”며 “노사 양측의 주장을 기반으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며 협의를 지원했지만 양측 주장의 간극이 크고 노조측에서 사후조정 중단을 요청해 조정안을 제시하지 않고 이번 사후조정을 종료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은 사후조정회의가 끝난 뒤에 만난 취재진에게 “노사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조정안을 요청드렸고, 그 조정안을 12시간 넘게 기다렸다”며 “저희가 느끼기에 조정안은 저희 요구보다 더 퇴보됐다고 생각했다”고 이유를 전했다.
조합의 요구인 ‘상한폐지 투명화’와 ‘제도화’가 관철되지 않았다는 점을 짚으며 “우리의 성과를 (SK하이닉스 등) 외부요인에 맡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일회성 안건을 받아들일 수 없어 결렬을 선언했다”며 “위법쟁의행위 금지가처분 준비를 잘 하겠다”고 덧붙였다. 김형로 부사장은 취재진에게 “공식적으로 회사가 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조정안이 나왔지만 공식적으로 제안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협상테이블, 자정 넘도록 팽팽한 줄다리기
이날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 제1조정회의실은 오전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삼성전자 노조의 총파업 개시일을 아흐레 앞두고 삼성전자 노사가 다시 만난 마지막 협상 테이블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양측은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칠 삼성전자의 파업만은 막기 위한 정부의 ‘사후조정’에 응해 이틀로 예정된 교섭에 나섰다. 전날 1차 교섭은 12시간 가까이 걸린 마라톤 협상이었지만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빈손으로 끝났다.
2차 교섭은 이날 오전 10시 시작됐다. 노조 대표인 최승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은 회의장에 들어가기 전 기자들과 만나 “조합원들이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내기 위해 활동 중이다”며 “합의든 결렬이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측 대표 교섭위원인 김형로 부사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협상 테이블로 향했다. 2차 교섭도 초반부터 노사가 기싸움 양상을 보이며 의견 차이를 좁히는 데 난항을 겪었다. 노조가 ‘영업이익 15% 성과급 지급 및 상한선 폐지’ 입장을 고수하자 사측은 ‘무리한 요구’라며 고개를 저은 것으로 전해졌다.
노사는 종일 협상을 이어갔지만 좀처럼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오후 6시20분쯤 잠깐 협상장을 나온 최 위원장은 “(노사) 의견이 서로 좁혀지지 않았다.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중노위에 조정안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노조는 중노위가 수정안을 요청하자 ‘영업이익의 성과급 비중을 1~2% 포인트 낮추는 대신 OPI(초과이익성과급) 주식보상제도를 확대해 성과급을 더 받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요구한 뒤 오후 8시20분까지를 시한으로 정했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 진통이 거듭되면서 시한을 한참 넘긴 후에도 협상장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은 결국 자정이 넘어서야 가까스로 열렸다.
◆‘유연한 보상제’ vs ‘영업익 15% 고정’ 충돌
정부의 중재 노력에도 삼성전자 노사의 협상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것은 사측이 주장하는 ‘유연한 보상 제도화’와 노조 측의 ‘영업이익 15% 고정 제도화’가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사측은 향후 경영실적에 따라 성과급 지급규모를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유연성에 방점을 찍었다. 일반적으로 당해 실적이 목표치를 넘어서면 초과 이익의 20% 내에서 연봉의 최대 50%까지 성과급을 지급하는 기존의 OPI를 적용하고, 경영성과가 좋을 경우엔 별도의 특별 보상안을 추가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로 고정하는 성과인센티브 지급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성과급을 임금처럼 고정비에 준하게 만들겠다는 의미로 읽혀 사측은 난색을 보이고 있다.
급변하는 반도체 시장에서 막대한 고정비 부담은 적자 전환 시기나 위기 상황에서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경영 리스크가 될 수 있어서다.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경기에 따른 실적 변동성이 커 이를 감안한 투자와 비용 구조를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하는데,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고정해 성과급으로 배분할 경우 업황 둔화 시 미래 투자 여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글로벌 테크 기업 중 영업이익의 특정 비율을 무조건 성과급으로 지급하도록 명문화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수적인 반도체 산업에서 자본 운용의 유연성이 떨어질 경우 중장기 경쟁력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총파업…43조원 손실 예상
노조는 추가 조정은 없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중노위 측은 노사 양측이 합의해 추가 사후조정을 요청하면 언제든 사후조정을 지원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와 관련 노측은 “오늘로 (조정은) 끝났다. 위법쟁의 금지 가처분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좀 더 신경쓰려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사후조정 시도까지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삼성전자 총파업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상황 변화 없이 삼성전자 노조가 21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18일 간 이어지는 총파업을 시행한다면 회사 측은 상당한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투자은행 JP모건은 파업이 실행될 경우 삼성전자가 최대 43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낼 것이라 분석했다.
노측에서는 참석 인원을 약 5만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회사에서 낸 건 위법한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으로 적법한 쟁의 행위는 가능한 만큼, 파업은 문제가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쟁의행위를 잘 진행 중”이라며 “저희 집행부도 같이 준비하고 있고 참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