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자살률 세계 1위 국가다. 그중 청년 자살률은 심각하다. 매일 청춘 한 명이 삶을 내려놓는다. 뉴스는 잠깐 떠들썩하고, 정치인들은 대책을 논하며, 관계 부처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다. 자살 예방 상담 전화 인력조차 예산 부족으로 정원에 미달한다는 현실이 버젓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청춘의 죽음은 그렇게 숫자로 처리되고 망각 속에 묻혀왔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오랫동안 반복해 온 민낯이다.
숫자는 냉혹하다. 자살은 10대부터 39세까지 우리나라 전체 연령대에서 사망 원인 1위다. 2022년에는 20대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025년에는 40대에서도 자살이 암을 제치고 사망 원인 1위로 올라섰다. 2015년 4947건이었던 청소년·청년(9∼24세)의 자살 시도 및 자해 건수는 2019년 9828건으로 불과 4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하루 평균 26.9명의 젊은이가 자살을 시도하거나 스스로를 해치고 있다는 뜻이다. K팝이 세계를 휩쓸고 K드라마가 전 세계 안방을 점령하는 동안, 그 화려한 무대 뒤에서 이 나라의 청춘들은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출처: 통계청 ‘사망원인통계’, 보건복지부·중앙자살예방센터, 질병관리청 ‘응급실손상환자심층조사’ 및 국가손상정보포털).
왜 이들은 삶을 포기하는가. 원인은 구조적이고, 그 구조를 만든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입시 경쟁의 굴레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청춘을 옥죄기 시작한다. 서울 고등학생의 46%가 학업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겪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 관문을 통과해도 지옥은 끝나지 않는다. 취업난, 불안정한 고용, 치솟는 집값.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이 거짓말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청년들은 ‘헬조선’이라는 자조로 이 땅을 불렀고, 그 절망의 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일본은 달랐다. 비슷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던 일본은 2007년 자살을 국가와 사회의 책임으로 공식 선언했다. 과로로 인한 자살을 사회적 범죄로 규정하고, 기업의 장시간 노동을 법으로 강력히 규제했다. 청년 심리 상담을 대폭 확대하고, 정신건강 치료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줄이는 데 국가 역량을 집중했다. 그 결과 2019년 자살률은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이 사람을 살렸다. 그렇다면, 한국도 일본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 정신건강 서비스를 당사자가 찾아가는 구조에서 국가가 먼저 찾아가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청년 고용 불안과 주거 문제 해결 없이 자살 예방은 공허한 구호다. 단 하나의 시험으로 인생을 서열화하는 교육 시스템도 근본부터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용기임을 사회 전체가 인정해야 한다.
최근 수년간 대중의 사랑을 받던 젊은 연예인들이 잇따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빛나는 성공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들의 고통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 죽음들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경쟁만 강요하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 아픔을 드러내면 나약하다 손가락질하는 인식, 청년의 절망에 예산이 없다 외면한 국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묵인한 우리가 모두 함께 만들어온 사회의 비극이다.
대통령의 분노가 이번만큼은 말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청춘 한 명이 조용히 삶을 내려놓고 있을지 모른다. 그 죽음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복진세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