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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감사의 정원’은 피를 나눈 형제국들을 이어주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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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 물이 뿌리를 타고 올라가 나무가 되듯이 스칸디나비아 여인들의 바구니에 담긴 털실이 장갑과 목도리가 되어 6·25 전장의 야전병원이 되었고, 그 정신은 대한민국 공공의료의 최고봉인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이어졌다. 전투에 참여할 수 없었던 폴란드는 전쟁고아를 양육하고 교육하여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나라의 인재를 길러냈다. 대한민국은 이렇게 탄생했고 이것을 영원히 기억하고 감사해야 한다.

한국전쟁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서 전투부대를 파병한 나라는 미국, 캐나다 그리고 콜롬비아 3개국이다. 특히 중남미 국가 중 유일하게 전투부대를 파병한 콜롬비아는 5062명의 젊은이를 낯선 땅에 보냈다. 2년에 걸친 참전 기간 동안 볼모 고지와 금성 전투 등 6·25 전쟁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장을 누비며 145명이 전사했고, 62명이 실종되었다. 이들의 용맹함과 흘린 피가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유 평화는 지켜내기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그것을 잊고 있었다.

 

강병근 서울특별시 총괄 건축가·건국대 건축대학 명예교수
강병근 서울특별시 총괄 건축가·건국대 건축대학 명예교수

그러던 중 필자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으로부터 콜롬비아 참전용사와 그 후손들을 위한 한·콜롬비아 우호 재활병원(DIVRI) 건립 사업 자문을 요청받았다. 60년 동안의 콜롬비아 내전으로 발생한 수많은 상이군경을 위한 재활병원의 건축 설계와 운영을 기획하는 뜻깊은 프로젝트였다.

건립 결과 2025년 말 기준 무려 6만2000여명의 참전용사와 부상 군인이 이 병원에서 치료받고, 재활훈련을 통해 사회로 복귀하는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았다. 비록 이제는 참전용사 중 대부분 90세가 넘어 생존자는 크게 줄었지만, 10만여명에 달하는 후손이 그들의 정신을 잇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콜롬비아 국민의 마음속에 대한민국은 ‘결코 은혜를 잊지 않는 나라’로 깊이 각인되었다.

이후 진심을 담은 ‘감사’가 외교적 성과로 이어졌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콜롬비아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피를 나눈 형제로서 우리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최근 우리나라의 대(對)콜롬비아 방산 수출액도 수억 달러 규모로 크게 성장했다. 재활병원 건립이 이러한 성과를 의도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보은의 실천이 자연스럽게 굳건한 혈맹관계와 국익 창출로 이어진 것이다.

최근 더 복잡해진 다자간 이해관계와 국제 분쟁 속에서 우리에게는 확실히 ‘우리 편’이 되어줄 우방국이 절실하다. 유엔 창설 이후 최초로 연합군을 조직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 준 6·25 참전국들과의 혈맹관계와 형제애를 더욱 단단히 다져야 한다.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갚을 줄 아는 나라가 될 때, 더 많은 국가가 우리와 진정한 형제가 되기를 희망할 것이다.

물이 뿌리를 타고 올라가 나무가 되듯이 ‘감사의 정원’은 딱딱한 석조 기념비를 넘어 피를 나눈 형제국들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대한민국의 상징적 중심 공간에 감사의 정원을 마련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도움을 잊지 않는 성숙한 국가’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미래세대의 결속과 국가적 위상을 한 차원 높이는 계기를 마련한다. 주요 외빈, 특히 참전국 정상들이 방한할 때 이곳은 반드시 들러야 할 상징적인 장소가 되고, 방문객들은 자국민이 흘린 피의 긍지를 재확인하며 우리와의 동맹을 굳건히 다짐하게 될 것이다. ‘감사의 정원’이 피로 맺어진 인연을 기억하고 미래의 평화를 약속하는 대한민국 외교의 살아 있는 이정표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강병근 서울특별시 총괄 건축가·건국대 건축대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