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중국 선전항의 세관 검사장은 활기로 가득 찼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건너온 사과 24t이 컨테이너에서 쏟아져 나왔다.
같은 시간 후난성의 한 물류 창고는 통관 절차를 마무리한 남아공산 와인 6000병으로 채워졌다. 중국 정부가 아프리카 수교국 53개국을 대상으로 전격 시행한 ‘무관세 혜택’ 조치의 상징적인 첫 수혜 장면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미국의 글로벌 영향력이 주춤한 틈을 노려 중국은 아프리카를 거대한 시장이자 핵심 광물 기지로 확보하고 대만 압박에도 활용하며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을 통칭)’ 포섭 전략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아프리카 통한 ‘대만 고립’ 압박
중국 국무원 관세세칙위원회는 지난 1일부터 2028년 4월30일까지 아프리카 수교국 53개국에 대해 특혜 관세율 0%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기존 최빈개도국 33개국에 국한됐던 혜택을 다른 20개 수교국까지 넓히며 사실상 대륙 전체를 자국 시장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이번 조치로 남아공산 사과에 적용되던 10%의 관세가 즉각 철폐되는 등 아프리카 수출업자들에게 중국 시장은 거부할 수 없는 경제적 생명줄이 됐다. 1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인용해 보도한 남아공 중앙은행(SARB)의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남아공의 대미 수출 비중은 10년 만에 최저치인 7.1%로 추락하며 독일(8.0%)에 밀려 3위로 내려앉았다. 반면 중국은 10.7%의 점유율로 부동의 1위를 수성했다.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이 아프리카 국가들을 중국의 경제 궤도로 밀어내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공세는 단순히 관세 장벽을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대륙의 물리적 기반을 장악하는 ‘인프라 정치’로 이어진다.
지난달 28일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서는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새 본부 단지의 인도식이 열렸다. 총 5650만달러(약 840억원)가 투입된 단지의 건설 비용 전액은 중국 정부의 원조로 충당됐다. 중국은 이미 2012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 2억달러(약 2971억원)를 들여 아프리카연합(AU) 본부 건물을 지어준 바 있다. 대륙을 대표하는 핵심 기구의 심장부를 중국산 자재와 기술로 채워 상징적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다. 나이지리아 주재 위둔하이 중국 대사는 “이번 기증은 중국과 서아프리카 관계의 중요한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이 같은 아프리카에 대한 전방위적 경제 협력은 대만을 향한 외교적 칼날이기도 하다. 중국은 2024년 중·아프리카협력포럼에서 채택된 ‘베이징 선언’을 앞세워 아프리카 국가들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고히 지지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 라이칭더 대만 총통의 에스와티니 방문 추진 당시 세이셸, 모리셔스, 마다가스카르 등 인근 국가들이 돌연 상공 통과 불허 방침을 통보한 배경에도 중국의 경제적 강압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라이 총통은 과거 대만 중화항공 여객기였던 음스와티 3세 국왕의 전용기를 빌려 타고 부총리와 동승하는 방식으로 방문에 성공하며 중국의 허를 찔렀다. 중국 외교부는 이를 “닭을 훔치고 개를 도둑질하는 도피 소동”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고, 대만은 “사나운 아낙의 욕설”이라 맞받아쳤다.
◆미국 빈자리, 중국식 소프트파워로 대체
중국의 장악력은 교육과 문화 등 소프트파워 영역에서도 확대되는 추세다. 트럼프 행정부가 2026년 말 유네스코 공식 탈퇴를 예고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뒷걸음질하는 사이 중국은 그 빈자리를 자국 중심의 시스템으로 채우고 있다. 트럼프 2기 들어 미국은 자국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수의 국제기구에서 탈퇴한 바 있다.
특히 유네스코가 지난달 중국의 천췬 전 화둥사범대 교수를 교육 담당 사무차장으로 임명한 것은 세계 교육 거버넌스의 주도권 변화 양상을 보여준다. 미국이 최근 긴급 상황에 처한 아동의 학습권을 지원하는 유엔 글로벌 교육기금 ‘에듀케이션캔낫웨이트’(ECW)에서 손을 뗐다는 점과 대조를 이루기도 한다.
중국은 또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의 부속 프로그램인 국제과학기구연맹(ANSO)을 통해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의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역량 강화를 지원하며 젊은 인재들을 대거 중국으로 유치하고 있다.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가 2019년 37만명에서 최근 26만명 수준으로 급감한 가운데 아프리카의 차세대 리더들은 중국의 장학금과 기술 표준에 익숙해지고 있다. 교육 투자의 성과가 세대 단위로 측정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같은 긴 호흡의 투자는 미래 글로벌 학습과 인공지능(AI) 거버넌스의 규칙을 중국이 주도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특히 AI 규제와 청소년 보호 문제에서도 양국의 접근법은 갈린다.
미국이 연방 차원의 일관된 입법에 난항을 겪는 사이 중국은 ‘미성년자 모드’와 ‘의인화 AI’ 사용 제한 조치 등을 신속히 도입하며 디지털 규제 분야에서 중국식 표준을 국제사회에 제안하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 보고서는 유네스코 내 중국의 영향력 확대로 인해 향후 글로벌 AI 보호 방안 논의가 중국의 기술 규제 경험을 대거 반영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프리카의 ‘산업 종속’ 딜레마
중국이 아프리카에 쏟아붓는 막대한 물량 공세의 기저에는 리튬, 코발트 등 4차 산업혁명의 필수 소재인 핵심 광물의 안정적인 공급망을 독점하려는 자원 안보 전략이 깔려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경제동반자협정(EPA) 체결을 지속 추진하며 이 지역을 자국 공급망의 핵심 고리로 편입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프리카 현지에서는 중국의 대규모 자본과 기술이 낙후된 인프라를 현대화하는 데 기여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지만, 동시에 거대한 경제적 종속에 대한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당장 중국의 무관세 정책이 농산물 수출에는 생명줄이 될지 모르나 아프리카 제조업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아프리카가 원자재를 내주고 중국의 완성품을 사 오는 비대칭적 무역 구조가 심화하면서 대륙 전체가 중국 제조업을 떠받치는 하부 구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새로운 딜레마’는 남아공의 사례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중국 시장이 사과나 와인 같은 농산물 수출에는 활로를 열어주지만, 남아공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나 공업 제품 등 고부가가치 품목에 대해서는 철저히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이 아프리카를 자국의 저렴한 공산품 소비처이자 원료 공급 기지로만 고착화하고 현지 산업의 고도화는 교묘하게 견제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일대일로 등 중국의 행보를 ‘부채의 함정’이라 공격하고 있지만 당장의 인프라와 시장 개방이 절실한 아프리카 국가들에 중국의 제안은 거부하기 힘든 현실적 선택지가 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산업적 자립은 더욱 멀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아프리카의 아프리카 거시경제 책임자인 자크 넬은 SCMP에 “남아공이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 생산국인 중국과 어떻게 경쟁할 수 있을까”라며 “중국 관세 제거가 일부 기업들에는 분명히 도움이 되겠지만 중국을 향한 대대적인 무역 방향 전환을 보게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미국과 중국이 모두 답이 아닐 때 (아프리카가) 어디를 봐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