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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 재건할 ‘양자 전능 시대’ 온다

1925년에 본격 등장한 양자역학
반도체 등 현대문명 기술 토대돼

슈퍼컴퓨터 한계 넘은 양자컴퓨터
1000년 걸릴 계산을 ‘200초’ 만에
신약 개발·기후 예측 등 적용 가능
각국 정부·빅테크 우위 선점 경쟁

퀀텀 2.0/폴 데이비스/김영태 옮김/바다출판사/2만5000원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 폴 데이비스가 쓴 ‘퀀텀 2.0’은 일반인에게는 난해하며, 때로는 상식을 배반하는 기묘한 양자의 세계가 어떻게 인류의 미래를 바꿀 ‘제2의 양자 기술혁명’을 이끌고 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스마트폰을 켜고, 메시지를 보내고, ATM에서 돈을 인출하고, GPS로 길을 찾는다. 우리는 매일 아무렇지 않게 디지털 문명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 모든 기술의 바닥에는 하나의 과학혁명이 놓여 있다. 바로 1925년 본격적으로 등장한 양자역학이다. 20세기 정보문명은 사실상 양자역학 위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랜지스터와 반도체, 레이저와 컴퓨터, 인터넷과 스마트폰까지 현대 문명의 핵심 기술은 모두 양자과학의 토대 위에서 발전해왔다.

하지만 저자는 지금까지의 기술 발전이 어디까지나 ‘퀀텀 1.0’의 시대였다고 말한다. 양자현상을 간접적으로 활용하는 수준에서 이제는 원자와 전자, 광자 같은 양자 자체를 직접 제어하고 설계하는 ‘퀀텀 2.0’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스마트폰 혁명이나 인터넷 혁명을 뛰어넘는 거대한 문명 전환을 예고하는 것으로 설명하며, 책은 퀀텀 2.0 시대가 산업과 경제, 의료, 금융, 기후 대응 분야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구체적으로 전망한다.

 

저자는 20세기의 ‘퀀텀 1.0’이 양자세계의 기묘한 현상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시대였다면, ‘퀀텀 2.0’은 그 기묘함 자체를 기술 자원으로 활용하는 시대라고 설명한다. AI 생성 이미지
저자는 20세기의 ‘퀀텀 1.0’이 양자세계의 기묘한 현상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시대였다면, ‘퀀텀 2.0’은 그 기묘함 자체를 기술 자원으로 활용하는 시대라고 설명한다. AI 생성 이미지

책에 따르면, 20세기의 ‘퀀텀 1.0’이 양자 현상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단계였다면, 오늘날의 ‘퀀텀 2.0’은 이를 기술 자원으로 활용하는 단계다. 대표적인 개념이 중첩(superposition)과 얽힘(entanglement)이다. 중첩은 하나의 입자가 동시에 여러 상태에 존재하는 현상이고, 얽힘은 멀리 떨어진 입자들이 마치 순간적으로 연결된 것처럼 반응하는 현상이다. 이 개념은 단순한 물리학 이론이 아니라 양자컴퓨터의 핵심 원리다. 기존 컴퓨터가 0 또는 1의 비트(bit)를 사용한다면, 양자컴퓨터는 0과 1이 동시에 존재하는 큐비트(qubit)를 사용한다. 큐비트가 서로 얽힐수록 정보 처리 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세계 각국 정부와 빅테크 기업이 양자기술 경쟁에 뛰어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네스코(UNESCO)는 2025년을 ‘국제 양자 과학 및 기술의 해’로 지정했고, 미국은 국가양자이니셔티브법을 추진했다. 영국은 국가양자기술프로그램을 가동했고, 중국 역시 국가 차원의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들은 ‘양자 우위(Quantum Supremacy)’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저자는 “퀀텀 2.0을 제어하는 자가 세계를 제어하게 될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폴 데이비스/김영태 옮김/바다출판사/2만5000원
폴 데이비스/김영태 옮김/바다출판사/2만5000원

흥미로운 대목은 양자컴퓨터가 가져올 실제 변화들이다. 저자는 양자컴퓨터가 기존 슈퍼컴퓨터의 한계를 뛰어넘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대표 사례가 2019년 구글의 발표다. 구글은 자사의 양자 프로세서 ‘시카모어(Sycamore)’가 기존 슈퍼컴퓨터로는 1000년 걸릴 계산을 단 200초 만에 해결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양자정보과학의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양자기술이 바꿔놓을 미래 역시 구체적이다. 우선 신약 개발이다. 지금까지는 신약 후보 물질을 찾고 검증하는 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분자와 화학 반응을 정밀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어 신약 설계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가능성이 있다. 수년이 걸리던 과정이 수주 단위로 단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 분야에서도 변화는 크다. 방대한 유전자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해 개인별 맞춤 치료를 설계하는 정밀의료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기후 문제 역시 중요한 분야다. 저자는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로는 불가능했던 수준의 기후 시뮬레이션을 가능하게 해 기후변화와 몬순, 해류 변화 등을 훨씬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금융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양자컴퓨터는 시장 분석과 포트폴리오 최적화를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다. 이는 투자 전략과 금융 시스템 자체를 바꿔놓을 잠재력을 가진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양자기술 산업에 이미 매년 수백억달러 규모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추정한다.

대중에게는 아직 낯설지만,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분야는 양자센싱이다. 양자 중첩과 얽힘을 활용해 자기장·중력·시간·온도 등을 극도로 정밀하게 측정하는 기술이다. 양자컴퓨팅과 양자통신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실제 상용화 가능성은 오히려 더 빠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방위산업과 의료는 물론이고 암흑물질 탐사와 중력파 연구 같은 기초과학 분야에도 활용될 수 있다.

양자역학은 어려운 학문이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그럼에도 우리 삶의 거대한 전환을 가져올 양자혁명을 더는 외면할 수 없다. 이미 우리 삶 속으로 들어왔고, 앞으로는 국가 경쟁력과 산업 구조, 우리의 삶 자체를 바꿔놓을 핵심 기술이 될 가능성이 크다. ‘퀀텀 2.0’은 바로 그 거대한 변화의 입구에서 독자에게 왜 양자세계를 이해해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