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으로 이뤄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은 이란 전쟁과 대만 문제, 무역 갈등 등 다양한 의제에 대해 주요 2개국(G2)이 어떤 ‘담판’을 짓는지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양국 협력에만 뜻을 같이했을 뿐 눈에 띄는 합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달라진 중국의 위상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14일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회담에서 중동 정세와 우크라이나 위기, 그리고 한반도 등 ‘중대한 국제 및 지역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또 두 정상은 중국 주최로 11월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미국 주최로 12월 마이애미에서 개최될 예정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상호 지지하기로 합의했다.
양국 경제협력에 대해 미국 백악관은 이날 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미국 기업들의 중국 시장 접근 확대를 포함해 양국 간 경제협력을 증진하는 방안들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외교부는 “중·미 경제·무역 관계의 본질은 상호 호혜와 윈윈”이라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이란 핵 불허와 호르무즈해협 개방에 대해 합의됐다는 발표도 했다. 백악관은 “양측은 에너지의 자유로운 공급을 지원하기 위해 호르무즈해협이 개방된 상태로 유지돼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며 “시 주석은 또한 중국이 호르무즈해협의 군사화와 그 이용에 통행료를 부과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했다. 이어 “(시 주석이) 향후 중국의 호르무즈해협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미국산 원유를 더 많이 구입하는 데 관심을 표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미·중 양국은 이란이 결코 핵무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데에도 동의했다고 백악관은 설명했다. 시 주석이 이란 문제에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양국 간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국가이며, 미·중 협력은 양국과 세계를 위해 많은 큰일과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며 양국 간 소통과 협력 강화 의지를 밝혔다. 시 주석은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헨리 키신저 박사를 중국에 파견해 양국이 ‘핑퐁외교’를 펼쳤던 일을 되짚으며 “이후 중·미는 많은 개방 협력을 하고, 끊임없는 우정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 내려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양국 정상의 공동 기자회견이나 공동성명, 합의문은 없었다. 중국 외교에서 ‘의견 교환’이라는 표현은 통상 서로 입장을 설명하는 수준에 그쳤을 때 사용한다는 점에서 현안에 대해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9년 전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에 맞춰 2500억 달러(당시 환율로 약 200조원)의 ‘선물 보따리’를 풀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오히려 시 주석은 이날 미국과의 관계 정립에 관한 발언을 잇따라 내놨다.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정면으로 거론한 것이 대표적이다. 시 주석은 “중·미 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뛰어넘어 대국(大國)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자문하며, 이를 “대국 리더들이 함께 써 내려 가야 할 시대의 답안지”라고 규정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기록한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전쟁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존 패권국이 신흥 강대국의 부상에 불안을 느끼면서 경쟁과 갈등이 발생하고 결국 충돌로 이어지는 상황을 설명한다. 과거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태평양은 두 대국을 수용할 만큼 넓다”며 제안했던 ‘신형 대국 관계’가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의 견제로 사실상 무력화되자, 이번에는 이란 전쟁 등 미국의 대외적 약점을 지렛대 삼아 ‘대등한 공존’을 더욱 강하게 압박한 셈이다.
시 주석이 언급한 ‘중·미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도 이 같은 중국의 의지가 드러난다. 외교부는 “향후 3년 또는 그 이상의 중·미 관계에 전략적 지침을 제공할 것”이라며 “협력을 중심으로 하되 경쟁은 절제되고 이견은 통제 가능하며 평화가 지속되는 관계”라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이 미국 ‘일강’ 체제에서 ‘미·중 양강’ 시대로의 실질적 전환을 알리는 이정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때 시 주석의 ‘외교 책사’로도 불렸던 정융녠 홍콩중문대학 선전캠퍼스 공공정책학원 원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미 G2 구도가 이뤄진 만큼 미국이 제로섬적 사고를 버리고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CNN은 “중국이 미국과 동등한 강대국임을 보여주는 기회가 됐다”며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영향력 있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베이징에 도착한 점이 이를 보여준다. 이들 기업 상당수가 현재와 미래의 성공을 위해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