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성웅이 칼 대신 호미를 들었다. KBS 2TV ‘심우면 연리리’에서 망해가는 농촌을 살리려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은 낯설지만 뜨겁다. 대중은 그를 ‘신세계’의 이중구로 기억하지만 정작 박성웅이라는 인간을 만든 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아닌 묵묵히 견뎌낸 10년의 시간이었다.
박성웅은 한국외대 법학과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하지만 배우라는 목표는 졸업장의 안정보다 컸다. 그가 무작정 뛰어든 현장은 냉혹했다. 1997년 데뷔 후 약 10년 동안 그는 긴 무명의 터널을 지났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었고 통장 잔고가 300만원뿐일 때 동료 배우 신은정과 결혼을 결심했다. 그 실전의 경험들이 박성웅에게 남긴 철학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적잖은 울림을 안긴다.
운은 준비된 자가 낚는 것
박성웅이 말하는 준비는 추상적인 다짐이 아니었다. 그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대신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을 물리적인 몸을 만드는 데 집착했다. 이는 단순히 요행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운이 올 때까지 현장에서 사라지지 않고 버티는 실질적인 힘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는 무명 시절 정두홍 감독의 액션 스쿨 1기생으로 들어가 매일 몸을 굴렸다. ‘넘버 3’의 단역부터 시작해 ‘여자, 정혜’의 이름 없는 조연 ‘미스터 소크라테스’의 한두 역을 거치며 그는 배역의 크기에 상관없이 현장을 지켰다. 이러한 준비는 훗날 결정적인 기회로 연결됐다.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주무치 역은 거친 액션과 기마 능력이 필수였고 준비된 몸을 가졌던 박성웅은 대역 없이 고난도 장면을 소화하며 단숨에 주연급으로 도약했다. 갈고닦은 몸은 기회가 왔을 때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현장 막내까지 내 편으로 만들어라
박성웅은 현장에서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스태프나 막내들에게 유독 깍듯한 것으로 유명하다. 무명 시절 자신이 받았던 대우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현장 막내까지 내 편으로 만들어라’는 원칙을 고수한다. 이는 단순한 미담을 넘어선 철저한 자기 증명의 과정이다.
그는 실제로 무명 시절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줬던 막내 스태프들이 훗날 감독이나 제작자가 되어 자신을 찾는 경험을 수차례 겪었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 선순환의 구조를 현장에서 결과로 만들어낸 셈이다. 그의 주변에 유독 오랜 인연이 많은 것은 그가 현장의 모든 이를 소모품이 아닌 동등한 동료로 대우했기 때문이다.
자존심은 버려도 자존감은 끝까지 쥐어라
박성웅은 배역을 따내기 위해 감독 앞에서 무릎을 굽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드라마 ‘태왕사신기’ 오디션 당시 김종학 감독에게 “한 번만 믿어달라”며 절박하게 매달렸던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비굴함이 아니었다. 배역을 따내기 위한 행위는 자존심의 영역이지만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자신을 믿는 것은 자존감의 영역이라고 스스로 경계를 세웠다.
그는 10년 가까이 조·단역을 전전하면서도 “나는 반드시 주인공이 된다”는 자존감만큼은 내려놓지 않았다. 2013년 영화 ‘신세계’ 캐스팅 당시에도 박훈정 감독 앞에서 이중구의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공고히 했다.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 우뚝 선 배경에는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던 뚝심 있는 믿음이 있었다.
나를 믿어준 사람을 위해 오늘 이를 악문다
박성웅의 성공 동력은 개인의 영광에만 머물지 않았다. 무명 시절 그를 견디게 한 것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책임감이었다. 아내 신은정에게 약속했던 “반드시 떵떵거리게 해주겠다”는 다짐은 그에게 기필코 지켜야 할 삶의 이정표였다. 그는 무명이 길어질수록 자신을 믿어준 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성실함으로 바꿔 현장을 버텼다. 타인에게 보이는 성공보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그에게는 더 큰 가치였다.
박성웅은 이제 드라마 ‘심우면 연리리’를 거쳐 대하사극 ‘문무’의 김유신 역 등 굵직한 차기작들을 앞두고 있다. 종영까지 단 5주가 남은 ‘심우면 연리리’ 속 성태훈의 고군분투는 결국 30년 전 박성웅이 서울 변두리에서 호미 대신 대본을 들고 싸웠던 그 생활인의 서사와 맞닿아 있다.
그의 30년 연기 인생은 말한다. 눈앞의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를 정직하게 버텨내는 태도이며 남을 흉보기보다 내 강점을 갈고닦는 단단함이라고. 50대 중반에 접어든 박성웅의 미소가 그 어느 때보다 견고한 무게감을 전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