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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규칼럼] 아슬아슬한 미·중 체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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習, 트럼프 향해 ‘대만 개입’ 경고
서태평양 중국 패권 인정하라는 것
사이에 낀 한국에도 던져진 화두
동맹 굳히고 자강으로 생존 지켜야

고대 그리스 역사가인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충돌한 펠로폰네소스 전쟁 원인을 아테네의 성장이 스파르타에 심어준 공포라고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강대국의 등장이 기존 패권국을 위협할 때 양측의 두려움이 결국 충돌로 이어진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 가설이 세워졌다. 지난 주 미·중 정상회담 와중에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면전에서 ‘투키디데스 함정’을 거론하며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방어할 것이냐”는 도발적 질문을 던졌다. “(대만 문제를) 잘못 처리하면 양국은 부딪치거나 심지어 충돌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표면적 메시지는 대만 독립을 지원하지 말라는 것이었지만, 기저에 깔린 속뜻은 중국의 부상(浮上)을 인정하고 함께 ‘G2(주요 2개국)’ 시대를 열어가자는 것이다. 시 주석은 예전부터 “넓은 태평양은 미·중 두 대국을 모두 수용하기에 충분히 넓다”는 말을 해왔다.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대통령을 붙잡아오고 이란 수뇌부를 폭사시켜도 중국은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 세력권도 인정하라는 취지다. 미국 패권이 약해질수록 중국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다.

 

조남규 논설실장
조남규 논설실장

이번 정상회담에선 미국 무기의 대만 판매 현안까지 테이블에 올랐다. 트럼프는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 시 중국과 사전 협의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대만 안보보장 원칙도 용도폐기할 태세다. 대만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트럼프의 거래 대상은 우방이나 동맹의 안보 현안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이 중국의 압박에 굴복할 리는 없다. 역사상 패권국이 새로운 강대국이 도전하는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인 전례는 없다. 미국은 특히 그렇다. 지난 역사가 증명한다. 소련과 독일, 일본은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순간 적이 됐다. 위협이 사라지면 적은 동지가 되기도 한다. 미국의 가장 큰 위협이 중국이라는 사실은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로선 미·중의 거래와 충돌 모두 안보 위협 요인이다. 패권에 도전하는 나라가 평화적으로 패권국으로 발돋움한 사례는 없다. 중국의 힘이 커지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지기 쉽다. 시 주석은 “대만 독립과 대만해협의 평화는 물과 불처럼 양립할 수 없다”고 했다. 대만에서 태어난 인구가 늘면서 대만의 정체성이 강해지고 있는 점도 변수라면 변수다. 대만인들의 자신감은 미·중 충돌의 또 다른 뇌관이다. 트럼프 이후에도 ‘미국 우선주의’ 기조는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언제든 미·중 체스판 위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 현안은 제물이 될 수 있다.

미·중 사이에 놓인 우리의 좌표는 정권마다 오락가락했다. 노무현정부의 ‘균형자론’은 미·중의 냉소만 자아냈다. 균형자가 되려면 우리가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균형이 달라져야 가능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중 등거리 외교론’을 내세우며 시 주석,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함께 천안문 망루에 오르는 초현실적 이벤트까지 벌였지만, 그 끝은 파국이었다. 미국은 배신감을 느꼈고, 중국은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국 배치 결정 이후 보복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의 일방적 친중 행보는 ‘혼밥’ 사진으로만 남았다.

이재명정부는 출범 초기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과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방향을 잡았다. 이 대통령의 “더는 ‘안미경중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할 수 없게 됐다”는 취지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국익에 부합한 ‘실용’의 노선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동맹 균열의 파열음이 잦아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 내에는 현 정부를 ‘친중 좌파’ 성향으로 보는 인사들이 있다. 야당 시절 이 대통령의 발언이 과도하게 입력된 오해일 것이다. 이를 해소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올 초 주한 미군 전투기와 중국 전투기의 서해상 대치 상황에서 우리 국방부가 주한 미군에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미·중 분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도였겠지만, 항의까지 할 일은 아니었다. 투키디데스는 “세상에서 권리란 오직 힘이 비슷한 나라들 사이에서의 문제다. 강자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자신들이 당해야만 할 고통을 당한다”고 했다. 동맹 관리와 자강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우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