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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놀이 대신 스마트폰… 비만·근시 ‘수두룩’ [심층기획-운동장을 빼앗긴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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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초등학생 건강 '빨간불'

줄어든 신체활동 시간
초등생 10명 중 3명은 ‘과체중’
37%, 2시간 이상 인터넷·게임
비만·체력 저하 악순환 시달려

정서 발달에 부정적
‘화면 노출’ 눈 건강에도 치명적
2025년 4학년 절반 넘게 ‘시력 이상’
감정조절·관계형성 악영향 지적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A(10)군이 요즘 ‘가장 좋아하는 일’은 축구다. 그는 “친구들과 뒤엉켜 공을 차고 땀범벅이 될 때 가장 신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A군에게 공놀이가 허락된 것은 주 100분짜리 축구학원 수업이 전부다. 학교 운동장과 아파트 놀이터 모두 공놀이를 금지한 탓이다. A군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학교나 동네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없는 현실이 아쉽다”고 말했다.

 

안전과 민원 등을 이유로 학교와 동네에서 뛰놀 공간이 줄어들면서 아이들의 신체활동이 학원과 실내 생활로 옮겨가고 있다. 그 결과, 어린이 기초 체력은 최근 10년 새 크게 악화했고, 비만·시력·수면·정신건강 등 아동의 신체·정신 건강 전반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줄어든 활동, 늘어난 체중·화면시간

 

세계보건기구(WHO)는 5∼17세 아동·청소년에게 하루 평균 60분 이상의 중강도 이상 신체활동을 권고하고, 주 3회 이상 근육과 뼈를 강화하는 활동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아이들의 신체활동 수준은 권고 기준에 크게 못 미친다. 18일 교육부의 학생건강검사 표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학생의 주 3일 이상 격렬한 신체활동 실천율은 63.9%였다. 체육 수업이나 학원에서 정해진 시간에만 몸을 움직이며 성장기 아이들에게 필요한 일상적 활동량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줄어든 자리는 스마트폰과 게임이 채우고 있다. 초등학생의 하루 2시간 이상 인터넷·게임 이용률은 2016년 19.6%에서 신체활동이 제한됐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후인 2021년 37.8%로 뛰었다. 지난해에도 37%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활동 부족은 체중 증가로 이어졌다. 과체중 이상 초등학생은 2017년 22.5%에서 2021년 31.4%까지 올랐다. 이후 소폭 낮아졌지만 지난해에도 29.7%로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렀다. 초등학생 10명 중 3명가량이 과체중 이상인 셈이다. 류인혁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초등학생, 그중에서도 저학년은 헬스나 정형화된 운동을 스스로 꾸준히 하기 어렵기 때문에 운동장과 놀이터에서 자연스럽게 뛰고 노는 시간이 사실상 가장 중요한 신체활동”이라며 “이런 일상적 활동이 제한되면 아이들의 하루 전체 활동량이 줄 수밖에 없고, 이는 비만과 체력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어릴 때부터 몸을 움직이는 습관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청소년기가 돼서도 운동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성장기 신체활동은 지금의 체중을 조절하는 문제를 넘어 평생의 생활습관을 만드는 과정”이라며 “뛰어노는 시간을 스마트폰과 게임 등이 채우면서 운동량이 아닌 일상의 기본 활동량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야외활동 감소는 소아청소년 눈 건강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교육부 학생건강검사에서도 지난해 초등학교 4학년 절반 이상(53.8%)이 시력이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시 진행을 억제하는 ‘하루 최소 2시간의 야외활동으로 충분한 햇빛을 받기’가 지켜지지 않는 데 따른 것이다.

백혜정 가천대 길병원 소아안과 교수는 “우리나라 근시 인구 절반이 소아청소년”이라며 “하루 2시간 이상 야외활동을 하고, 근거리 작업은 40분을 넘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한국사시소아안과학회가 지난달 마련한 근시 예방 가이드라인의 ‘제1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소아 근시는 개인의 생활습관 관리나 병원 진료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워 일본·대만·싱가포르 등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학교 체육활동 하루 2시간 의무화 △교실 조도 개선 △채광 확보 △교내 약시 치료 시설 마련 등을 시행하고 있다.

 

백 교수는 “아이를 병원에 빨리 데려오고, 안경이나 약물치료 등으로 적극 대응을 잘하고 있지만 정작 아이가 교실, 학원, 스마트폰 앞에 오래 묶이는 생활은 변하지 않고 있다”며 “학교와 돌봄 공간에서 야외활동 시간을 확보하고, 교실 환경 개선, 근거리 작업 시간을 관리하는 정책이 같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몸을 못 쓰는 아이들, 마음도 흔들린다

 

운동장과 놀이터는 감정조절을 배우고 또래와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운동장 폐쇄’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하는 이유다.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초등학생들이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 등으로 불안이 커진 점을 언급하며 “놀이와 예체능 활동은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감정을 전환하는 중요한 통로인데, 그 기회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신질환으로 진료받은 7∼12세 아동은 2021년 8만4529명에서 지난해 15만8994명으로 4년 새 88% 증가했고, 이 중 항우울제 처방인원은 2021년 1만8769명에서 지난해 4만2110명으로 4년 새 2.2배로 늘었다. 아동 정신건강 지표는 빠르게 악화하고 있지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또래와 관계를 맺는 공간은 오히려 줄어들면서 아이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운동과 바깥놀이는 감정조절과 뇌 발달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실제 신체활동은 병원에서도 우울감이나 불안이 있는 아이들에게 권하는 치료적 개입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다름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실패를 경험하고 회복하는 공간까지 줄어드는 것은 정신건강 측면에서 우려스럽다”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운동량만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며 지고 이기고 다시 해보는 경험”이라고 강조했다.